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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8. 10. 7, 미국 아이오와 아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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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5. 11. 18, 코네티컷 댄베리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제33대 부통령(1941~45).
민주당 뉴딜 정권의 '보통 사람' 철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1930년대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업정책을 입안했으나 외교문제를 둘러싸고 1946년 민주당과 결별했다. 월리스는 본래 농업전문가였다.
그는 다수확 옥수수 품종실험으로 식물유전학을 발전시켰고, 나중에 자신이 한 실험을 바탕으로 잡종 옥수수 사업을 해 큰돈을 벌었다. 1928년 월리스는 민주당에 입당했다. 농업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데다가, 1932년 선거에서 '보수적인 아이오와'를 '급진적 뉴딜 정책'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행정부에서 농업부장관(1933~40)을 지냈다. 농업부장관으로 농산물 가격을 인상해 일정수준으로 유지시키고, 토양을 보존하며 예비식량을 비축하고,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통과시킨 뉴딜 법안(특히 1933년의 농업조정법)을 입안·집행했다.
루스벨트의 3번째 임기인 1941~45년 부통령으로 있으면서 루스벨트의 친선대사로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했으며 극동지역도 순방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게 되자 그는 긴급업무, 특히 경제문제를 담당하는 여러 업무를 맡아보게 되었다.
당내 보수파, 특히 남부 출신자들이 1944년 월리스의 재임용에 반대를 표명하여 상원의원 해리 S. 트루먼에게 부통령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월리스는 그후 2년 동안 상무부장관직을 맡았다.
그러나 소련에 대한 트루먼 행정부의 강경한 냉전정책을 계속 비판하다 장관직에서 해임되었다. 그후 1946~47년 자유주의 주간지 〈뉴 리퍼블릭 The New Republic〉의 편집자로 있으면서 새 좌익정당인 진보당의 결성을 도와주었다. 1948년 소련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국제연합(UN)이 모든 외국원조를 관장하도록 하며, 군비를 축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일반투표에서는 100만 표 이상을 얻었으나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1표도 얻지 못했다. 그후 진보당과 결별하고 정치에서 물러났다.
많은 저작을 남긴 월리스의 유명한 저서들로 사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한 〈6,000만의 직업 Sixty Million Jobs〉(1945)·〈보통사람의 시대 The Century of the Common Man〉(1943)·〈미국은 선택해야 한다 America Must Choose〉(1934)·〈장기적 전망 The Long Look Ahead〉(196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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