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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4. 10. 9(구력 9. 27), 상트페테르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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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7. 12. 13, 인도 나가르 |
국적 | 러시아/미국 |
요약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의 무대장치가.
본명은 Nikolay Konstantinovich Ryorikh. Rerikh라고도 씀.
기념비적인 역사적 무대장치로 유명했으며 통속적 신비주의자이기도 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으며, 무대장치가·고고학자·풍경화가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는 자연, 특히 선사시대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무대장치가로서는 액자무대의 보수적 전통을 따랐고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이고리 공 Prince Igor〉(1914)에 나오는 12세기 러시아와, 에드바르트 그리그의 〈페르 귄트 Peer Gynt〉(1912)에 나오는 전설상의 스칸디나비아 장면을 훌륭하게 재현했다(→ 폴로비치안 춤).
1920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특히 부유층 사이에서 화가, 예언자, 교사, 반전 운동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미국의 부호들은 그에게 자금을 대주고 박물관까지 세워주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지금도 뉴욕 시에 남아 있다.
1930년 헨리 월리스와 친구가 되었으며, 월리스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농업장관이 된 뒤 그의 권유에 따라 고비 사막의 식물학적 여건이 미국 중서부의 황진 지대와 일치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고비 사막 식물탐사에 나섰다. 그러나 뢰리치는 자신의 임무를 태만히 하고 아시아의 정치문제에 개입하여 코삭 출신의 수행원 1명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불교신자들이 혁명을 일으키도록 선동했다. 월리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뢰리치와 결별했는데, 두 사람이 정식으로 갈라선 것은 편지교환을 통해 서로의 유별난 견해를 확인한 뒤의 일이었다.
뢰리치는 한 편지에서 만주에 관한 그의 수수께끼 같은 견해를 다음과 같은 기발한 암호로 표현하고 있다. "원숭이는 주인의 땅을 나누어갖기 위해 지배자와 친해지려 하고 있다. 방랑자는 이 같이 생각하고 원숭이를 매우 의심하고 있다." 이른바 이 '구루 편지들'은 피츠버그의 한 신문사가 소유하게 되었지만, 1940년 루스벨트 행정부의 압력을 받아 발표되지 못하다가 1948년에 비로소 첫 발췌본이 출간되었다.
이 일화는 로버트 C. 윌리엄스의 〈러시아 예술과 미국 돈, 1900~1940 Russian Art and American Money, 1900~1940〉(1980)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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