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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3. 1. 1, 세네갈 지갱쇼르카자망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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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세네갈 |
요약 세네갈의 작가, 영화감독.
주로 역사소설·정치소설을 썼으며, 1960년대 중반 이후 제작한 영화로 명성을 얻었다.
젊었을 때 카자망스 해안에서 어부로 일했고, 마르사숨에 있는 도자예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후 다카르로 가서 벽돌공·배관공·기계수습공으로 일하다가 1939년 프랑스군에 입대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2년 자유 프랑스군에 배속되어 1944년 처음으로 프랑스에 가게 되었다. 부대가 해체된 후에도 프랑스에 남아 마르세유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했고 투쟁적인 노동조합원이 되었다.
프랑스어를 읽고 쓰는 법을 독학했으며, 1956년 마르세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첫 소설 〈흑인 부두노동자 Le Docker noir〉를 발표했다. 척추장애로 육체노동을 그만두게 된 뒤 생계를 위해 문학을 택했다. 그 후의 작품으로는 〈오 나의 조국, 아름다운 국민 O pays, mon beau peuple!〉(1957)·〈신의 작은 숲 Les Bouts de bois de dieu〉(1960) 등이 있는데, 특히 〈신의 작은 숲〉은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적당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쟁취하기 위해, 악명높은 식민정책의 학대에 대항한 1947~48년의 철도파업을 묘사하고 있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밖에 단편소설집 〈볼테크 Voltaïque〉(1962)·〈프레장스 아프리켄 Présence Africaine〉에 실린 〈열풍 L'Harmattan〉(1964)·〈살라 Xala〉(1974) 등이 있는데, 특히 〈살라〉는 그의 영화 걸작품에 주제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1960년경 우스만은 아프리카 대중의 약 80%가 프랑스어를 모르고 어떤 언어로 된 책이든 읽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들과 접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스크바 영화학교에서 공부한 후 아프리카로 돌아와 3편의 짤막한 테마 영화를 만들었는데 모두 사회참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1966년 영화 〈흑인 소녀…… La Noire de……〉를 만들었는데, 아프리카 제작자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이 대작은 다카르 출신의 문맹인 한 소녀가 프랑스인 가정에 고용되어 사실상의 노예상태에 처하게 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1967년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1968년 다카르의 일상생활과 부패에 대한 희극 〈우편환 Mandabi〉과 함께 프랑스어가 아닌 월로프어로 된 영화에 혁명적인 신기원을 이루었으며, 그 후로 나온 그의 모든 영화는 월로프어로 만들어졌다. 아프리카 종교의 여러 가지 면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는 야심작 〈아웃사이더 Ceddo〉(1977)는 그의 조국 세네갈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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