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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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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385(?) 이후 |
요약 대립교황 (366~367 재위).
366년 9월 24일 교황 리베리우스가 죽은 뒤 2명의 부제 우르시누스와 성 다마수스 1세가 동시에 교황 계승자로 선출되었다. 우르시누스를 지지하는, 작지만 강력한 소수 파벌은 로마의 율리아 대성당에 모여 9월 24일에 그를 교황으로 축성했다. 10월 1일 다마수스가 축성을 받기 전 다마수스 지지자들은 우르시누스 지지자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그들을 율리아 대성당에서 몰아냈다. 비슷한 전투가 10월 26일 리베리아 대성당에서도 벌어졌는데, 그 이전에 우르시누스는 갈리아로 유배당했다.
우르시누스 지지자들은 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에게 공의회를 소집해 교황권 분쟁을 해결해달라고 설득했고, 367년 9월 황제는 우르시누스가 로마로 돌아오도록 허락했다. 다시 전투가 벌어져 368년 1월 12일 우르시누스는 추방당하고 로마 밖에서만 살도록 제재를 받았다. 몇 개월 후 선동의 우려가 있는 우르시누스 지지자들도 로마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곳으로 추방당했다.
우르시누스는 갈리아로 돌아왔고, 그의 추종자들도 계속 그를 따랐기 때문에 분열이 지속되었다. 이탈리아로 돌아오도록 허락받은(370~372) 이들은 밀라노에 자리잡고서 다마수스에게 다시 반기를 들었다. 마침내 378년 로마 교회회의는 다마수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우르시누스를 단죄하여 쾰른으로 유배했다.
우르시누스와 그 추종자들이 분열을 일으킨 동기는 정통성보다는 야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우르시누스는 381년까지도 다마수스를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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