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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08년경, 중국 저장성[浙江省] 우싱[吳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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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85년경 |
국적 | 중국 |
요약 14세기 중국 원나라 말기 화가이자 원 4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주요 작품은 <구구임옥도>와 <추심추휴도>. 자는 숙명(叔明), 호는 황학산초(黃鶴山樵) 또는 향광거사(香光居士)로 원대의 유명한 화가였던 조맹부의 외손자였다. 외할머니 관도승도 화가인 문예가 뛰어난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적 재능을 이어받았다. 먹을 아낌없이 써서 화폭을 가득 채웠고 동요하는 형체들이 생동감이 있는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했다. 왕몽의 산수화는 이후 명, 청대의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왕몽은 원대(元代 : 1279~1368)의 유명한 화가였던 조맹부(趙孟頫)의 외손자였는데, 외할머니 관도승(菅道昇)도 화가였다. 왕몽은 원과 명대(1368~1644)의 양대에 걸쳐 말단 조정관리로 일했는데, 승상 호유용의 모반에 연루되어(나중에 그의 무고가 밝혀짐) 투옥된 뒤 결국 생애의 마지막 5년을 옥중에서 보내다 죽었다.
왕몽은 대개 필선이 가늘고 간결한 그림을 그렸던 예찬(倪瓚)과 가까운 친구였지만 그와는 대조적인 양식을 추구했다. 즉 아낌없이 먹을 써서 동요하는 듯한 형체들로 가득 메운 농도 짙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예찬의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그림들 역시 옛 화법들을 의식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회화적이고 화려했던 남송(1127~1279)의 원체화(院體畵)에 의도적으로 반기를 제기했던 원대의 선배화가들보다는 남송원체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대신에 그의 그림들은 상상력과 개성이 뚜렷한데, 이와 같은 독자적인 자세는 원대 초기 회화에서 대두되었던 혁신에 힘입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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