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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다른 표기 언어 Honduras 동의어 온두라스 공화국, Republic of Honduras
요약 테이블
인구 10,759,406명 (2024년 추계)
수도 테구시갈파
면적 112,49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온두라스 공화국 (Republic of Honduras)
기후 열대성기후, 온대성기후
민족 구성 메스티소(90%), 아메리카 원주민(7%), 흑인
언어 에스파냐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로마가톨릭(97%), 개신교(3%)
화폐 렘피라 (HNL)
국화 카네이션
대륙 중남미
국가번호 504
GDP USD 24,021,000,000
전압 110V/ 60Hz
도메인 .hn

요약 중앙아메리카의 국가. 수도는 테구시갈파이다. 온두라스는 3/4 이상이 산악지대이다. 저지대는 해안평야와 강 주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온두라스의 인구는 메스티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작은 촌락이나 고립된 부락에서 농업을 하며 산다. 경제는 바나나·커피·설탕·목재 등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데 크게 의존하고 있다. 1인당 GNP는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광산업은 은·금·납·아연 등의 광석을 생산하는 엘모치토 지하광산에 집중되어 있다. 온두라스는 민간정부가 이끄는 공화국이지만 군부의 세력이 막강한 국가이다.

수도는 테구시갈파이다. 북쪽으로 카리브 해, 남쪽과 동쪽으로 니카라과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72km의 태평양 쪽 해안선이 폰세카 만을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는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에 접한다.

온두라스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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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온두라스

자연환경

온두라스는 3/4 이상이 산악지대이다. 저지대는 해안평야와 강 주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의 저지대는 해안에 있는 작은 평야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흘러 폰세카 만으로 들어가는 촐루테카 강 하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넓은 북쪽 저지대는 동서로 약 640km 펼쳐진 카리브 해 해안평야와 손가락처럼 북쪽 산맥을 향해 뻗어 있는 울루아·아관·파투카 강 등의 하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체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진 온두라스의 산들은 대부분 태평양 연안의 활화산 밖에 자리잡고 있어서, 이웃나라들이 심한 화산폭발이나 지진을 겪는 데 비해 피해가 거의 없는 편이다. 북부의 저지대는 덥고 비가 많이 내린다. 평균기온은 26∼28℃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780∼2,790㎜이다. 이러한 기후 덕분에 서부지역과 니카라과 국경 쪽을 향해 동쪽으로 펼쳐진 울창한 우림지역에서는 벼·바나나·카사바 등의 열대작물 재배가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해발 600∼1,200m의 작은 산간 골짜기들에서는 평균기온이 19∼23℃이다. 연강우량이 1,000㎜ 이하인 지역은 별로 없다. 온두라스 고지의 비가 많이 오는 비탈지역에는 질 좋은 참나무·소나무 숲이 분포하며, 고도가 낮은 해안습지에는 홍수림이 자란다. 납·아연·은·금 등의 소규모 다종 철광이 있으며, 구리·카드뮴·안티몬 등도 채굴된다.

풀하판자크(Pulhapanzak) 폭포

ⓒ Matyas Rehak/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국민

온두라스의 인구는 메스티소가 9/10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온두라스의 메스티소는 대체로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국가 메스티소보다 피부색이 더 검으며 인디언적인 특색도 더 강하다. 그 외에 인디오, 스페인계 백인이 인구의 나머지를 차지한다.

2024년 기준 온두라스의 인구수는 1,075만 명이고 인구밀도는 96명/㎢이다. 1950년 149만 명 대비 약 5배가 증가한 수치이다. 인구의 1/3 15세 미만이며, 주민의 절반 가까이는 작은 촌락이나 고립된 부락에서 농업을 하며 살고, 도시거주자가 절반이 조금 넘는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지만 극히 소수지역에서 인디언 언어를 사용하며, 북부 해안 그리고 카리브해 섬 지역에서는 영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종교는 그리스도교도가 대부분이다. 로마 가톨릭이 95%로 지배적이며 개신교와 기타 종교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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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온두라스의 경제는 바나나·커피·설탕·목재 등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데 크게 의존하는 시장경제 체제이다. 노동력의 1/4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업자이다. 1980년 국민총생산(GNP)은 20억 7,000만 달러이고, 1인당 GNP는 560달러로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농업이 GNP의 약 1/3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약 3/5이 종사하고 있다. 주요작물은 옥수수·콩·쌀 등이다. 주요환금작물인 바나나가 미국 회사들을 통해 수출된다. 커피와 설탕 외에 냉동육류도 중요한 수출품목이다. 목재 펄프와 종이를 생산하기 위한 제재소와 여러 가지 시설 등이 올란초에 건설되고 있다. 주로 미국으로 수출되는 새우는 카리브 해 앞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어업의 주종을 이룬다. 광산업은 은·금·납·아연 등의 광석을 생산하는 엘모치토 지하광산에 집중되어 있다.

세계은행의 자금원조를 받아 근해에서는 석유 탐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제조업이 GNP의 1/5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1/10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가구·직물·신발·화학제품·시멘트·고무 등이 생산된다. 전력생산량은 1989년에 20억 2,800만kW/h였다. 수입연료에 의존하는 전력은 전체 전력생산량의 1/3 미만이며, 주로 수력발전을 이용한다. 산페드로술라 남쪽에 위치한 엘카혼 수력발전소가 주요발전소이다.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의 가격 상승으로 무역 적자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적자를 벌충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고 있다. 정부는 외국자본 및 소비재에 대한 관세를 올리고, 국내자본의 유출을 막기 위한 조처를 취했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1989년 현재 수입의 거의 38.8%를 차지하는 미국을 비롯하여 베네수엘라와 일본을 꼽을 수 있다.

온두라스의 화폐, 렘피라(Lempira, HNL)

ⓒ ppart/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정치와 사회

온두라스는 민간정부가 이끄는 공화국이지만 군부의 세력이 막강한 국가이다.

1982년에 공표된 헌법에 따라 행정권은 보통선거를 통해 4년 단임으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있다. 입법권은 4년 임기로 선출되는 134명의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에서 행사한다. 그러나 최고권력은 총리를 비롯한 각료 전원에 대한 임명거부권과 국가안전보장정책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군부최고위원회에 있다.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Juan Orlando Hernández)

왼쪽이 온두라스의 현 대통령, 오른쪽 이스라엘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 Hanay / wikipedia | CC의 BY-SA 3.0

사회개혁을 옹호하는 온건보수파인 자유당과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익 국민당이 양대 정당을 이룬다.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도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실직·산업재해·질병·출산·노년·신체장애·과부 등의 경우에 혜택이 주어진다. 보건과 위생상태는 나쁜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염·말라리아·백일해·장티푸스 등의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영양실조도 심각한 문제이다. 의사는 1만 명당 3명뿐으로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평균수명은 64세이다.

의무교육은 7∼12세의 아동들에게 무상으로 실시된다. 학령기의 아동들은 대부분 교육을 받고 있다.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 정부는 초등교육을 마친 모든 성인들이 2명 이상의 문맹 성인들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보도매체는 대체로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군부가 선전금지, 취재기자 매수, 편집자 투옥, 라디오 방송국 폐쇄 등의 행위를 통해 대중매체를 통제하기도 한다.

문화

온두라스 서부지역은 마야 인디언 문명권의 일부였다. 유물들이 코판 시에 있는 마야 고고학지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시 부근에는 마야 제국 당시의 건축물들이 황폐한 채로 남아 있다. 그림과 문학에서는 스페인 식민지시대의 영향이 많이 발견된다.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예술가는 풍경화가인 카를로스 가라이와 미술공예국립학교를 창설한 안토니오 발라스케스이다. 주요작가로는 시인이자 역사가인 라파엘 에이오도로 바예와 시인 클레멘티나 수아레스가 꼽힌다.

안토니오 발라스케스(Antonio González Velázquez)

스페인의 화가

ⓒ Escarlati / wikipedia | Public Domain

역사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시대의 온두라스는 1000년에 번영했던 마야 문명에 속했다. 코판 시에 있는 신전은 465년부터 마야 인구가 갑자기 감소한 800년까지 사용되었다. 1502년 콜럼버스가 온두라스에 도착했으며, 1522년 유럽인들의 영구정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경쟁 관계에 있던 스페인 정복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으나, 1526년 최초의 군주가 임명되고 잠시 안정을 찾았다(→ 콩키스타도르). 1537년 스페인인들과 인디언들 사이에 주요전쟁이 발생했다. 렘피라라는 이름의 족장이 3만 명이나 되는 인디언 병력을 이끌고 스페인인에게 저항했으나, 1539년 그가 죽음으로써 전쟁이 종결되었다. 인디언들은 계속해서 질병과 노예생활로 목숨을 잃었다.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사업을 주도했던 사람들

ⓒ Davepape / wikipedia | Public Domain

온두라스는 독립된 식민지가 아니었다. 1570년 이후 과테말라 총사령관령의 일부가 되었다. 1570년대 은이 발견되면서 투기자들이 몰려들어 인구가 증가했다. 17세기에는 전시에 적선을 나포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영국 민간무장선의 침입을 계속해서 받았다. 멕시코 독립운동에 자극을 받아 1821년 중앙 아메리카에 있는 모든 주들이 독립하게 되었다. 1823년 중앙 아메리카의 주들이 중앙 아메리카 연방을 만들었다.

온두라스의 지도자인 프란시스코 모라산이 연방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나, 온두라스는 연방을 탈퇴하여 1838년 독립을 선언했다.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1876년 이후부터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새 헌법을 공포했다. 20세기초 정치는 불안정했으며, 이웃나라인 니카라과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바나나 생산에 투자한 미국 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온두라스에 해군을 파견했다.

프란시스코 모라산(Francisco Morazán)

온두라스의 지도자, 중앙 아메리카 연방의 주요인물

ⓒ Viladrell. / wikipedia | CC의 BY-SA 3.0

온두라스는 1932년 티부르시오 카리아스 안디노 장군이 대통령으로 선출될 때까지 정세가 계속 불안정했다. 그는 사실상 독재자로서 1949년까지의 통치기간 동안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카리아스 이후 정권교체가 잦았다. 1957년에 채택된 헌법은 온건사회개혁 계획을 제도화했다. 1975년 토지개혁을 확대 실시했으나, 소수 농민에게만 이익이 돌아가 농민연맹의 항거가 계속되고 있다. 민간 정부가 선출된 1982년 1번을 제외하고 군부지도자가 계속 통치해왔다. 좌익 게릴라들의 활동이 활발해져 군대는 1982년 이후에도 여전히 배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온두라스와 한국과의 관계

온두라스와 한국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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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온두라스와 한국은 1962년 4월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상주 대사관이 개설되기 전까지 주 멕시코 대사관에서 온두라스의 대사 업무를 겸했는데, 2007년 4월 주 온두라스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설되면서 분관되었다. 한편, 한국에는 1990년 7월 주한 온두라스 상주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온두라스는 국제사회에서 전통적으로 한국을 지지해 온 우방국가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어 온두라스의 빈곤퇴치와 경제발전을 위해 통상, 투자, 기술협력 등 다방면에서의 교류 및 협력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09년 온두라스의 비상 정변 이후 당해 무역 규모는 감소했지만, 그 이후로는 점차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대온두라스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전기 제품, 철강, 고무제품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커피 및 차, 광석, 철강, 의류 등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온두라스 수출액은 1억 4,057만 달러이며 수입액은 1,533만 달러이다. 온두라스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대부분 의류 및 섬유, 봉제 업종에 집중되어 있다. 양국은 문화협정(1974. 4), 대외협력기금 차관에 관한 협정(2000. 7), 투자보장협정(2001. 7),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차관에 관한 시행 약정(2001. 5) 등의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온두라스에서는 케이팝(K-Pop)의 인기가 많아, 2015년에는 대사관 주관 하에 ‘2015 케이팝 월드 페스티벌(K-Pop World Festival)’ 예선전이 열리기도 했다. 또한 2017년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온두라스의 주요 출판사 관계자들이 한국 바로 알리기 사업을 통해 양국의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온두라스에는 한인교회를 비롯하여 토요한글학교, 온두라스 한인회 및 한인 골프회 등이 마련되어 있다. 2023년 기준 온두라스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285명이며, 2023년 기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온두라스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4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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