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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잉글랜드 왕 헨리 3세가 귀족들이 재정적 지원을 약속한 대가로 받아들인 개혁안(1258).
영국 최초의 성문 헌법으로 볼 수 있다. 무모한 시칠리아 원정으로 파산에 직면한 헨리는 1258년 봄 의회(부활절 의회 또는 소위 '미친 의회')를 소집했다. 몹시 곤궁해진 국고를 귀족들이 채워주는 대가로 헨리는 절반은 왕이 뽑고 나머지 절반은 귀족들로 구성된 24명의 왕실 위원회가 제출한 개혁안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 위원회의 보고서(6월 10일경 공표)를 옥스퍼드 조례라고 부른다.
대귀족 집단이 서약을 함으로써 승인된 이 조례는 12년 동안 효력을 지녔고 이를 통해 개혁을 성취할 수 있는 기구가 구성되었다. 정부는 왕과 15명으로 구성된 귀족 위원회의 공동 지도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이 위원회는 모든 중요한 사항에 대해 왕에게 조언을 할 수 있었다. 왕국의 모든 고위 관리들은 왕과 이 위원회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의회는 1년에 3차례 소집되어 앞으로의 개혁을 협의했다.
1234년 이래 처음으로 대사법관이 임명되어 지방행정을 감독하게 되었고 대다수의 지방 주(州) 장관들이 그 주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기사들로 대치되었다. 이 조례는 1261년과 1262년 교황의 칙서에 의해 취소되었다가 1263년 귀족들의 활동으로 복원되었고, 다시 1264년 1월 아미앵 협정으로 프랑스 왕 루이 9세에 의해 수정·복원되었지만 마침내 1266년 10월 케닐워스 선언에 의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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