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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95년 군산시에 통합되었다. 금강과 만경강이 각각 북부와 남부를 지나 서해로 유입되며 넓은 평야지대가 발달하여 주요 곡창지대를 이루었다. 지금의 군산시 옥구읍, 옥도면, 회현면, 옥산면, 옥서면, 개정면, 대야면, 성산면, 임피면, 나포면, 서수면 등 1개읍 10개면 73개 동리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
옥구군이 위치했던 지역은 옛 옥구현과 옛 임피현이 합해 이루어진 곳이다. 1487년에 군산진 옆에 조창인 군산창이 설치되어 전주 등 7개 고을의 조세를 수납하는 전라도 조운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1912년에 이리-군산간 군산선이 개통되고 1914년 호남선의 전구간이 개통되어, 내륙과 바닷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하나의 생활권이었던 군산시와 옥구군이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새로운 형태의 군산시가 되었다.
1995년 군산시에 통합되었다. 금강과 만경강이 각각 북부와 남부를 지나 서해로 유입되며 넓은 평야지대가 발달하여 주요 곡창지대를 이루었다. 지금의 군산시 옥구읍·옥도면·회현면·옥산면·옥서면·개정면·대야면·성산면·임피면·나포면·서수면 등 1개읍 10개면 73개 동리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
옥구군이 위치했던 지역은 옛 옥구현(沃溝縣)과 옛 임피현(臨陂縣)이 합해 이루어진 곳이다.
옛 옥구현은 이 지역의 서남부, 옛 임피현은 동북부에 해당한다. 옛 옥구현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막로국(莫盧國)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마서량현(馬西良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옥구현으로 개칭해 임피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임피군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조선에 들어 1397년(태조 5)에 진(鎭)을 설치하고, 1403년(태종 3)에는 회미현(澮尾縣)을 병합했으며, 뒤에 현감을 파견함으로써 조선시대 동안 옥구현을 유지했다. 1487년(성종 18)에 군산진(群山鎭) 옆에 조창인 군산창이 설치되어 전주 등 7개 고을의 조세를 수납하는 전라도 조운(漕運)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옥구의 별호는 옥산(玉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전주부 옥구군, 1896년에 전라북도 옥구군이 되었다. 일본과의 수호조약 체결 후 1899년에 군산포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개항장과 옥구감리서가 설치되어 옥구부로 승격되었다. 1912년에 이리-군산간 군산선이 개통되고 1914년 호남선의 전구간이 개통되어, 이 지역은 내륙과 바닷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개항장을 중심으로 급속히 도시로 발달한 지역이 군산부로 승격되어 옥구군에서 분리되고, 반면에 임피군이 옥구군에 합병되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군산부의 정면·서면이 구읍면으로, 동면·박면이 옥산면으로, 장면·풍면이 회현면으로, 군산부의 북면, 충청남도 오천군 하남면, 전라남도 지도군 고군산면이 미면으로 통합되었다. 임피군은 폐지되고 임피군의 13개면이 6개면으로 통합되어 옥구군에 편입되었다. 1910∼30년에 지금의 옥서면 일대에 간척사업이 실시되어 넓은 지역에 농경지와 간척촌이 형성되었다. 1931년에 구읍면이 옥구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80년에 옥구면이 옥구읍으로, 미면이 미성읍으로 승격되고, 1986년에 미성읍이 관할하던 도서지역이 옥도면으로 분리되었다. 1989년에 미성읍과 옥도면 일부가 군산시에 편입되고, 옥구읍 서부출장소가 옥서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하나의 생활권이었던 군산시와 옥구군이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새로운 형태의 군산시가 되었다. → 군산시, 임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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