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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
14세기와 15세기의 거의 전기간에 걸쳐 로마냐의 포를리 시(市) 및 인근 지역들을 다스렸다. 그들의 기원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내용에 따르면 오르델라피 가문은 14세기초부터 포를리를 사실상 통치했던 것 같다.
1307년 스카르페타 오르델라피가 '백성의 지도자'(capitano del popolo)라는 칭호로 포를리 시의 수령이 되었다. 그들은 공격적인 기벨린(황제파)이었으며, 14세기 동안에 폴를림포폴리와 체세나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결국 구엘프(교황파)는 그들에 대항해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것은 3년 동안의 전쟁으로 이어졌다(1356~59). 이 전쟁에서 프란체스코 오르델라피와 그의 못지않게 결연한 그의 부인 치아 우발디니는 완강하게 체세나를 방어했으나 결국 패했다. 프란체스코는 포를리를 빼앗겼지만 1376년 그의 아들 시니발도가 되찾았다.
1405년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오르델라피 가문은 또다시 교황파에게 포를리를 빼앗겼으나 얼마 후 다시 탈환했다. 15세기의 나머지 기간 내내 오르델라피 가문은 포를리를 장악하고 빼앗기기를 거듭했으나 예술의 후원자이자 살인적인 폭력을 행사한 인물로 유명한 피노 3세 오르델라피 집권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형인 체코 3세를 살해한 뒤 통치자가 된 그는 자신의 첫번째 부인, 어머니, 2번째 부인 역시 살해했는데, 1480년 자신이 3번째 부인 루크레치아 피코에게 살해당했다.
교황 식스투스 4세는 포를리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아 자기 조카에게 주었다. 오르델라피 가문은 1503~04년에 잠시 세력을 회복했지만 그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구엘프와 기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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