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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본은 보통 성서를 기초로 한다. 장면에서 장면으로의 전개에 필요한 해설을 다양한 성부들에 의한 레치타티보가 담당하며 이러한 레치타티보에 이어 아리아와 합창이 나온다. 〈요한 수난곡〉·〈마태오 수난곡〉을 작곡한 바흐는 찬미가인 코랄의 비중을 높이는 한편 해설을 강조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오페라·가면극, 심지어 그리스 비극으로부터도 영향을 받고 있는데, 교회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기시했으나 그의 작품들은 오페라 가수들에 의해 극장에서 공연되었고, 교회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또한 하이든은 서사적 요소와 극적인 요소를 고유의 성숙한 관현악 어법에 융화시켜 〈천지창조〉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멘델스존의 〈엘리아〉는 지금도 연주되는 몇 안 되는 19세기 오라토리오의 하나이다.
대본은 보통 성서를 기초로 하며, 장면에서 장면으로의 전개에 필요한 해설을 다양한 성부들에 의한 레치타티보가 담당하며 이러한 레치타티보에 이어 아리아와 합창이 나온다.
오라토리오는 본래 전례의식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오라토리오가 가장 활발했던 곳은 일종의 종교 오페라적인 성격을 띠었던 이탈리아이다. 한편 독일 오라토리오는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다루었고(수난곡), 영국에서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여러 형식을 종합한 오라토리오를 만들어냈다. 오라토리오란 용어는 로마 교황청 부속 예배당 기도소라는 뜻의 'oratory'에서 유래했다.
16세기 중엽 기도소 안에서는 성 필립푸스 네리 주재의 교화적 목적을 가진 음악공연이 있었는데 중간에 설교가 끼였으며 이후 초기 이탈리아 오라토리오에서 2막이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 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라토리오는 에밀리오 델 카발리에레의 발레를 포함한 음악극 〈영혼과 육체의 표현 Rappresentazione di anima et di corpo〉(1600)이다.
17세기 중엽 자코모 카리시미는 〈구약성서〉에 토대를 두고 라틴어 대본을 사용하여 보다 엄숙한 분위기의 오라토리오를 만들었다. 카리시미의 오라토리오는 길이가 짧은 것과 긴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단순하고 과장이 없으며 합창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에 이르면 해설이 그 사이에 끼여들며,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한편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혼용 오라토리오도 등장하지만 18세기말까지 보다 인기를 끌면서 많이 작곡된 것은 거장적 기교를 지닌 가수들이 공연하였던 이탈리아어 대본에 의한 '오라토리오 볼가레'이다.
프랑스의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는 카리시미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공적으로 이탈리아 오라토리오를 프랑스적으로 변형시켰다.
독일 오라토리오는 독일적인 요소와 이탈리아적인 요소를 혼합한 하인리히 쉬츠로부터 시작되었다. 쉬츠의 오라토리오는 오로지 복음서만을 주제로 삼는데, 매우 강렬한 정서적 표현을 보여주며 합창에 대한 다양한 처리법으로 J.S.바흐를 예견하고 있다.
쉬츠의 〈부활절 오라토리오 Easter Oratorio〉(1623)는 각 등장인물의 가사를 서로 다른 성부로 작곡하는 오랜 관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Christmas Oratorio〉(1664)를 비롯한 그의 오라토리오는 소박함과 화려함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17세기말에 이르면 쉬츠에게 나타났던 독일 오라토리오의 이러한 균형이 깨어지게 되며 이 시기에는 예수의 죽음을 다루는 수난 오라토리오의 대본으로 성서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대신 성서에 운을 붙여 변형시키거나 서정적인 주석을 혼합시킨 다소 감상적인 성격의 대본을 사용했다.
바흐의 걸작 수난 오라토리오인 〈요한 수난곡 Passion According to St. John〉(1724 초연)·〈마태오 수난곡 Passion According to St. Matthew〉(1729)은 비록 규모가 커지고 후기 이탈리아의 아리아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쉬츠가 견지했던 균형을 이어받고 있다.
더불어 바흐는 희중이 부르는 찬미가인 코랄의 비중을 높이는 한편 해설을 강조했다. 본질적으로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작곡된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대부분 성서 이야기를 시대에 맞는 문체의 대본으로 바꾸어 사용했으며, 합창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오페라·가면극, 심지어 그리스 비극으로부터도 영향을 받고 있으며, 교회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기시했으나 그의 작품들은 오페라 가수들에 의해 극장에서 공연되었고, 교회와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헨델은 이처럼 다양한 오라토리오 양식을 개발했지만, 후대 작곡가들은 그의 오라토리오 중 〈사울 Saul〉·〈이집트의 이스라엘인 Israel in Egypt〉(1739)·〈메시아 Messiah〉(1742)·〈삼손 Samson〉(1743) 등 성서 대본에 의한 오라토리오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였다.
후대의 작곡가들은 헨델 양식을 모방했지만 의도를 잘못 인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국 오라토리오는 150년 동안이나 평범한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바흐와 헨델 이후 대륙의 오라토리오는 활기 있고 창조적인 전통을 잃었는데 하이든의 오라토리오만이 예외였다. 하이든의 〈천지창조 Die Schöpfung〉(1798)는 헨델 오라토리오와 모차르트 오페라의 영향을 보여주며, 서사적 요소와 극적인 요소를 하이든 고유의 성숙한 관현악 어법에 융화시켜 걸작을 만들었다.
하이든의 〈사계 Die Jahreszeiten〉(1801)는 세속적 내용에 형식도 느슨하게 연결된 일련의 감각적인 곡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자신이 오라토리오라고 불렀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라토리오 〈올리브 산의 예수 Christus am Ölberg〉(1803)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9세기 동안 특히 독일과 영국의 대규모 연주회나 합창 단체, 음악제에서 연주되었던 오라토리오들도 대부분 성공적이지 못했다.
멘델스존의 〈엘리아 Elijah〉(1846)는 지금도 연주되는 몇 안 되는 19세기 오라토리오의 하나이다. 멘델스존은 바흐 음악을 부활시키고자 노력했으며 헨델 음악에 대한 경험도 있어 이 두 양식을 혼합하고자 하였다.
〈엘리아〉는 합창의 원기왕성함으로 주목받는 작품인 데 반해 〈성 바울로 St. Paul〉(1836)는 수준급 작품이지만 별다른 종교적 정서를 표현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멘델스존 이후 독일 오라토리오는 중요한 작품을 내지 못했다. 루터 번역 성서를 대본으로 한 요하네스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 Ein deutsches Requiem〉(1868)이 유일한 예외에 속하는 작품이며 오라토리오로 분류된다.
프란츠 리스트의 오라토리오 〈그리스도 Christus〉(1855~56)·〈성 엘리자베스의 전설 Die Legende von der heiligen Elisabeth〉(1873)은 신앙심과 극적 요소를 방대한 규모로 결합시킨 작품이다.
이탈리아 오라토리오는 18세기 이후 영향력을 잃게 되며, 슬라브 작곡가들도 오라토리오를 별로 쓰지 않았다. 프랑스 오라토리오로 유일하게 중요한 작품은 일련의 극적 장면이 돋보이는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그리스도의 어린시절 L'Enfance du Christ〉(1854)이다. 20세기 영국 오라토리오의 걸작은 에드워드 엘가 경의 〈제론티어스의 꿈 Dream of Gerontius〉(1900)인데 이 작품은 추기경 헨리 뉴먼의 시를 극적인 틀로 삼으면서 음악은 그 안에서 결코 혼란스럽지 않게 전개되고 있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라틴어 대본에 의한 오페라 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 Oedipus Rex〉(1927)은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20세기 중엽의 오라토리오 작곡가는 스위스의 프랑크 마르틴이며 옛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 중국에서도 세속적 내용의 대작 오라토리오들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오라토리오는 폴란드의 크지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성 루가 수난곡 St. Luke Passion〉이다.→ 수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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