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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4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무반주 단성성가에서부터 독창자·성가대·관현악을 위한 곡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15세기부터는 3명의 부제가 각기 3부분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가사에 극적 성격이 두드러졌으며, 회중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17세기 함부르크에서는 시적이고 감상적인 연주가 청중들을 사로잡았으나, 성직자들에게는 전폭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1704년 헨델의 〈요한 수난곡〉을 각색한 크리스티안 하인리히 포스텔의 곡과 J. S. 바흐의 〈요한 수난곡〉·〈마태오 수난곡〉이 등장했다. 수난곡은 대개 오라토리오의 형태로 만들어졌고, 대규모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사용했는데 하이든과 베토벤은 예수 수난을 주제로 한 오라토리오 작곡에 모범을 제시했다.
4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무반주 단성성가에서부터 독창자·성가대·관현악을 위한 곡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중세 수난곡은 부제(副祭)가 수난에 관한 예배가사 전체를 노래했다. 이때 1옥타브 내의 11개 음을 3영역으로 나누어 사용했는데, 그 중 맨 아래 4음(베이스)은 그리스도를 나타냈고, 중간의 3음(테너)은 해설자, 위의 4음(알토)은 그밖의 모든 인물들(군중, '투르바')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 각 음역들은 독특한 연주방법으로 구별되었다(교회음악).
15세기부터는 3명의 부제가 각기 3부분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가사에 극적 성격이 두드러졌으며, 회중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13세기에는 수난곡들을 음악극으로 각색한 수난극(Passion play)이 만들어졌는데, 이 가운데 2편이 유명한 독일어 필사본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에 실려 있다. 이러한 수난극들은 점차 많이 늘어났으며, 더 길고 복잡해지는 경향을 띠었다. 15세기초에 부유한 특권층들은 '투르바' 부분을 노래할 수 있는 소규모 합창단을 두었다. 수난곡을 다성음악으로 만든 초기 작곡가들 가운데 하나는 부르고뉴 출신의 질 뱅슈아(1438경)였다.
유럽 전역에 걸쳐 뛰어난 작곡가들은 단성성가와 다성음악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형태의 수난곡을 작곡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초기에 독일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로 된 수난곡 가사들을 사용했다. 1550년경 루터교 작곡가 요한 발터는 〈마태오 복음서에 따른 수난곡 Passion according to St. Matthew〉을 작곡했는데, 이 곡은 1806년까지도 널리 연주되었다.
다른 독일의 수난곡들은 모테트에서처럼 가사 전체가 다성음악으로 이루어진 '모테트 수난곡' 형식을 채택했다. 16세기 프랑스 작곡가 앙투안 드 롱가발은 단성성가의 정형을 폭넓게 사용한 사람으로서, 정교한 다성음악보다는 가사의 낭송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독일에서는 야코프 한들과 레온하르트 레흐너가 종교적 경건함이 깃든 곡들을 작곡했다. 16세기 플랑드르 작곡가들은 롱가발의 곡에서 영감을 받아 모테트 수난곡들을 작곡한 반면에, 드레스덴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스칸델로는 독일어로 〈요한의 복음서〉에 따른 혼합 수난곡을 작곡했다.
그는 단성성가형과 모테트형(다성음악) 등 2가지 유형의 수난곡을 결합했는데, 투르바(군중) 성부를 전체 5성부로 편성해서 해설자의 한 성부와 베드로, 빌라도, 그외 사람들의 세 성부와 대조시키는 한편 예수의 대사가 있는 부분은 4성부로 구성하는 혼합가사 방식을 취했다.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독창과 다성합창 형식은 독일음악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토마스 젤레(1599~1663)의 〈마태오 수난곡 St. Matthew Passion〉은 이중 합창(double chorus)을 폭넓게 사용한 반면, 그의 〈요한 수난곡 St. John Passion〉은 악기들과 '배경 합창단'(distant choir)을 혼합했고, 특정 악기들이나 합창대원들에게 서로 다른 배역들을 정해줌으로써 대화자들을 대조시켰다. 요한 타일레와 요한 쿠나우는 독일 수난곡에 프로테스탄트교 찬송가인 코랄을 도입했다.
유명한 작곡가 하인리히 쉬츠가 작곡한 3편의 뛰어난 수난곡들은 더욱 엄격한 형식으로 되돌아갔다.
17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수난곡이 거의 작곡되지 않았는데, 이는 성금요일에 정교하게 장식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요한 수난곡〉은 성서 가사를 정확히 따르고 지나친 장식을 제한하는 엄격한 예배음악이고, 프랑스의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의 수난곡은 강렬한 정서와 음색의 대조가 특징이다.
함부르크에서는 성서의 본문을 각색한 새로운 대본에 기초하여 예수 수난에 관한 오페라를 만들려는 최초의 시도들이 있었다.
이렇게 시적이고 감상적인 연주들은 독일 청중들을 사로잡았으나, 성직자들에게는 전폭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1704년 헨델의 〈요한 수난곡〉을 각색한 크리스티안 하인리히 포스텔의 곡과 J. S. 바흐의 〈요한 수난곡〉·〈마태오 수난곡〉이 나타났다. 바흐의 수난곡들은 가사를 중시했고, 상당한 열정이 담긴 음악과 가사를 결합시켰으며, 중간중간에 합창과 기악을 독창자들과 번갈아 연주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고조시켰다.
C. P. E. 바흐는 수난곡 2편을 썼는데, 이 곡들은 독일 밖에서까지 유명했던 카를 하인리히 그라운의 〈예수의 죽음 Der Tod Jesu〉과 비슷한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통틀어 수난곡은 대개 오라토리오의 형태로 만들어졌고, 대규모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사용했다. 하이든과 베토벤은 예수 수난을 주제로 한 오라토리오 작곡에 모범을 제시했다. 영국 작곡가 존 스테이너 경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Crucifixion〉(1887)가 커다란 인기를 얻었고, 20세기 수난곡 가운데는 폴란드의 작곡가 크지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오라토리오 〈루카 수난곡 St. Luke Passion〉, 찰스 우드(영국), 로렌초 페로시(이탈리아), 쿠르트 토마스(독일)의 〈마르코 수난곡 St. Mark Passions〉들, 그리고 아서 서머벨(영국)의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Christ〉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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