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649. 4. 5, 미국 보스턴 |
---|---|
사망 | 1721. 7. 8,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상인.
동인도회사 간부이며 부유했던 그는 예일대학교의 후원자였다.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으나 3세 때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그뒤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런던의 한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671년 예일은 동인도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로 전근했다. 처음에는 아주 낮은 직위로 시작하여 1687년 포트세인트조지에 있는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의 동인도회사 지점의 총책이 되었다. 5년 뒤에 동인도회사는 회사 공금을 유용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했다.
1699년까지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에 억류되어 계속 벌금을 물었어도 영국으로 돌아올 때에는 상당한 재산을 가져올 수 있었다. 런던에서 다이아몬드 무역을 시작했으나 자신의 시간과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자선사업에 바쳤다. 코네티컷의 런던 대표였던 제레미어 덤머로부터 식민지 세이브룩에 있는 대학교에 기부할 것을 제의받고 예일은 도서를 기증했다.
1718년 코튼 매더는 상당한 정도의 기부를 할 경우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최근에 뉴헤이번으로 이주한 세이브룩 학교의 이름을 예일로 개칭하겠다는 서한을 보내왔다. 이에 예일은 더 많은 도서와 조지 1세의 초상화와 동인도에서 생산된 여러 가지 상품을 기증했다. 이 기증품들은 보스턴에서 800파운드 정도에 팔렸으며, 그 돈은 뉴헤이번에 예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건물을 신축하는 데 사용되었다.
1745년에 인가를 받으면서 모든 기관은 예일대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예일은 북웨일스의 렉섬에 안장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경제인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