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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상북도 중북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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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00,100 (2024) |
면적 | 669.39㎢ |
행정구역 | 1개읍 9개면 9개동 |
사이트 | http://www.yeongju.go.kr/ |
요약 경북 중북부에 있는 시. 소백산맥 자락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봉화군, 서쪽으로는 단양군, 북쪽으로는 영월군, 남쪽으로는 안동시와 접한다. 조선 중기의 <정감록>에서 천재지변에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지역 중 첫 번째로 꼽힌 지역이다. 인삼·사과·직물이 지역 특산물이다. 면적 669.39㎢, 인구 100,100(2024).
대한민국의 중동부, 경상북도 중북쪽에 있는 시이다. 조선 중기의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에서, 전쟁이나 천재지변을 피해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열 곳의 지역인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첫 번째로 꼽히기도 했다. 현재는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교육·문화의 중심지이며, 강원도와 영남지방을 연결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특산물로 인삼·사과·직물이 유명하다.
행정구역은 풍기읍·부석면·단산면·순흥면·안정면·봉현면·장수면·이산면·문수면·평은면·상망동·하망동·영주동·휴천동·가흥동 등 1개읍 9개면 9개 행정동 13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경상북도 영주시 시청로 1이다. 면적 669.39㎢, 인구 100,100(2024).
연혁
삼한시대에 날이국이었던 이 지역은 신라의 파사왕이 점령하고 군(郡)을 설치함으로써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 내령군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강주로 개칭했다. 1259년(고종 46)에 영주로 승격되었다. 조선초인 1413년(태종 13)에 영천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영천의 별호는 구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1895년(고종 31)에 안동부 영천군, 1896년에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비입지인 임지면이 봉화군으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풍기군과 순흥군이 영천군에 합병하여 영주군을 이루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졌으며, 풍기군의 10개면이 5개면으로, 순흥군의 6개면이 3개면으로 통폐합되었다. 1923년에 상리면·하리면이 예천군으로 이관되었다. 1940년에 영주면, 1973년에 풍기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0년에 영주읍이 시로 승격, 분리되면서 영풍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영풍군과 중심도시 기능을 담당해왔던 영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영주시가 되었다(→ 순흥도호부, 풍기군). 1998년 상망동과 하망1동이 상망동으로, 하망2동과 하망3동이 하망동으로, 영주 1·2·3동이 통합되어 영주1동으로, 영주4동이 영주2동으로 변경되었다. 2008년 문수면 벌사리의 명칭을 대양리로 변경했다.
인구
통합 이전 영풍군의 인구는 197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증가했으나 영주읍이 시로 승격된 1980년 이후부터 인구가 현저히 감소했다. 실질적으로 영주시가 분리되기 시작한 1979년 9만 2,830명이 되어 전년 대비 46%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1980~91년에는 27.1%의 인구감소율을 나타냈다. 한편 옛 영주시 지역은 시 승격 초기에 인구가 증가하다가 1983년 8만 5,199명으로 최대인구수를 나타낸 이후에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1990년에는 8만 4,355명이 되었다.
1995년 통합 이후 2000년 13만 1,351명, 2005년 11만 9,668명, 2010년 11만 4,856명으로 감소추세가 이어졌다. 2024년 인구는 10만 100명으로 1995년 대비 약 18%가 감소했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읍·면지역에 시 전체 인구의 약 32%가 분포하며, 통합 이전 영주시 지역이던 동지역에 68%가 분포한다. 1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가흥1동(1만 5,439명)·풍기읍(1만 558명)·가흥2동(1만 264명) 뿐이다(2024).
연혁
삼한시대에 날이국이었던 이 지역은 신라의 파사왕이 점령하고 군(郡)을 설치함으로써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 내령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선곡현(지금의 예안)·옥마현(지금의 봉화)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강주로 개칭했다가 995년(성종 14)에 단련사를 두었다. 1018년(현종 9)에 안동의 속현으로 병합되었으나, 1143년(인종 21)에 순안현으로 승격되어 독립했으며, 1259년(고종 46)에 영주로 승격했다. 조선초인 1413년(태종 13)에 영천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영천의 별호는 구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1895년(고종 31)에 안동부 영천군, 1896년에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비입지인 임지면이 봉화군으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풍기군과 순흥군이 영천군에 합병하여 영주군을 이루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영천군의 봉향면·망궐면·가흥면이 영주면으로, 두전면·호문면이 장수면으로, 적포면·권선면·진혈면(일부)이 문수면으로, 천상면·진혈면(일부)이 평은면으로, 산이면·어화면·말암면이 이산면으로 통합되었으며, 풍기군의 10개면이 5개면으로, 순흥군의 6개면이 3개면으로 폐합되었다. 1923년에 상리면·하리면이 예천군으로 이관되었다.
1940년에 영주면, 1973년에 풍기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0년에 영주읍이 시로 승격, 분리되면서 영풍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영풍군과 중심도시 기능을 담당해왔던 영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영주시가 되었다(→ 순흥도호부, 풍기군).
자연환경
시의 대체적인 지세는 북서부 시계를 따라 뻗어 있는 소백산맥과 그 지맥의 영향으로 북쪽과 서쪽이 높고 남쪽과 동쪽이 낮은 지형을 보이고 있다.
북서부에는 봉황산(819m)·선달산(1,236m)·어래산(1,064m)·형제봉(1,178m)·국망봉(1,421m)·소백산(1,440m)·제1연화봉(1394m)·제2연화봉(1,357m)·도솔봉(1,314m)·묘적봉(1,148m)·자구산(784m) 등이 솟아 있다. 도솔봉으로 넘어가기 전 산세가 낮은 곳에 있는 죽령(689m)은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남부에는 박달산(577m)·봉수산(570m)·불로봉(482m)·대마산(375m) 등의 비교적 낮은 산들이 솟아 있다. 하천은 이 지역의 북서부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흐르는 남원천과 국망봉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는 죽계천이 합류해 남류하면서 서천을 이룬다. 또한 북동부에서 발원한 낙화암천은 봉화군 봉화읍에서 내성천에 합해져 동남부를 흐르다가 평은면에서 유로를 바꿔 문수면 승문리 일대에서 서천에 유입한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침식분지가 발달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분지이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기후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통합 전 영주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1℃ 내외, 1월평균기온은 -3.8℃ 내외, 8월평균기온은 24.3℃ 내외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158.3㎜ 정도이다. 한편 통합 전 영풍군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0.9℃ 내외, 1월평균기온은 -3.3℃ 내외, 8월평균기온은 24.0℃ 내외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199.8㎜ 정도이다.
북부지역에는 낙엽송이 울창하며, 산지에는 몇 백 년 동안 자생한 철쭉이 많다. 소백산의 정상에는 대초원이 펼쳐져 있으며 곳곳에 원추리가 무리지어 서식하고 있다.
인구
통합 이전 영풍군의 인구는 197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증가했으나 영주읍이 시로 승격된 1980년 이후부터 인구가 현저히 감소했다. 1960년 13만 1,625명에서 1970년에 16만 85명으로 1960~70년에 21.6%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1974년에는 17만 5,444명의 최대 인구를 기록한 후 점차 소폭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영주시가 분리되기 시작한 1979년 9만 2,830명이 되어 전년 대비 46%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1980~91년에는 27.1%의 인구감소율을 나타냈다. 1991년 인구이동상황은 전입이 3,991명, 전출이 7,658명으로 전출이 2배 정도 많았으며, 전출인구 가운데 60.3%가 도외로 이동했다. 한편 옛 영주시 지역은 시 승격 초기에 인구가 증가하다가 1983년 이후 감소했다.
1980년에 7만 7,846명에서 1983년에는 8만 5,199명으로 최대인구수를 나타내 1980~83년에 7,353명이 증가했다. 그러나 1983년 이후 감소추세를 보여, 1990년에는 8만 4,355명으로 1983~90년에 844명이 감소했다. 2024년 기준 시의 인구는 10만 100명으로 1996년 대비 약 20%가 감소했으며, 행정동별로 볼 때 읍·면지역에 시 전체 인구의 약 32%가 분포하며, 통합 이전 영주시 지역이던 동지역에 68%가 분포한다. 1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가흥1·2동·풍기읍 등이다.
산업과 교통
경상북도 북부지방과 강원도·충청북도를 연결하는 철도교통의 요충지로서 다른 중소도시에 비해 상업 및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다. 총경지면적 146.17㎢에 경지율은 21.8%로 비교적 높으며, 그 가운데 논이 58.59㎢, 밭이 87.58㎢이다(2014). 쌀·보리 외에 주요 농산물로 사과·인삼·잎담배 등의 특용작물을 생산하며 누에치기가 활발했다.
특히 풍기읍은 예로부터 토질·기후가 인삼재배에 알맞아 한국의 대표적인 인삼산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밖에 봉현면·순흥면에서도 많이 재배된다. 또한 사질 토양이 많고 기후조건이 병충해에 강해 사과의 재배도 활발한데, 주로 풍기읍·부석면·봉현면·순흥면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된다. 그밖에 평은면에서 약초 작물인 산약(참마)과 길경(도라지)이 재배된다.
시내에 있는 제조업체는 총 82개소로 3,543명의 종업원이 종사한다(2014). 특히 풍기읍과 봉현면 일대에는 인견 및 화학섬유업체가 집중되어 있는데, 평안도 월남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풍기인견직물이 생산된다. 강원도 남부, 충청북도 북부, 경상북도 북부의 풍부한 임산자원을 이용한 목재·펄프·제재 관련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상업활동은 풍기읍·부석면의 5일 정기시장과 상설시장인 영주·풍기 중앙시장과 풍기인삼시장, 그리고 일반상설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선이 시의 중앙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경북선이 시의 남서부를 지나 영주역에 이르며, 영주역에서 영동선이 시작되어 북동 방향으로 지난다. 제천-안동을 잇는 국도가 중앙선과 나란히 달리고, 음성-울진, 영주-영천 방면을 연결하는 국도가 영동선·경북선과 나란히 달린다. 앞으로 중앙선의 복선화가 이루어진다면 영주시는 경상북도의 지하자원과 임산물·농산물의 집산지 및 유통지로서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중심시가지 중앙에 철도가 위치하고 있어 시가지 발달에 문제점을 안고 있다. 도로총길이 527.36km, 도로포장률 75%이다(2014).
유물·유적·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7, 보물 23, 사적 5, 천연기념물 3, 중요민속자료 3), 지방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2, 기념물 5, 민속자료 8, 무형문화재 1), 문화재자료 42점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휴천동의 휴천리지석 및 입석(경상북도 기념물 제24호)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순흥면에 벽화고분인 어숙묘(사적 제238호)가 있으며, 산성으로는 상을곡성지·순흥읍성·소백산성지·초암석성·구성산성지·고현성지·산내성지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희방사·성혈사·비로사·진월사 등이 있는데, 부석사에는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국보 제17호)·부석사무량수전(국보 제18호)·부석사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부석사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부석사고려각판(보물 제735호)·원용국사비·3층석탑·당간지주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밖에 가흥동에 영주석조보살입상(보물 제60호)과 영주가흥동마애삼존불상(보물 제221호), 영주포교당의 석탑, 가흥리5층석탑, 창진동5층석탑을 비롯해 숙수사지당간지주(보물 제59호)·영주석교리석불상(보물 제116호)·흑석사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초암사3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순흥면에 사액서원의 효시인 소수서원(사적 제55호)과 그 안에 안향의 초상화인 회헌영정(국보 제111호)·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 보물 제485호)·주세붕영정(보물 제717호) 등이 있으며, 하망동의 영주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호)와 봉암서당·산천서원·구호서원·이산서원·운곡서원 등이 있다. 그밖에 인동장씨선세홍백패(보물 제501호)·장말손영정(보물 제502호)·적개공신장말손상훈교서(보물 제604호) 등이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영주동에 있는 누각인 영훈정, 구성산에 있는 가학루, 구성산 서구대 아래에 있는 정자인 구학정, 구성산 서쪽에 있는 반구정, 가흥동에 있는 누각인 제민루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순흥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4호), 단산면의 떡갈나무(천연기념물 제285호), 안정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3호)가 있다.
소백산을 비롯한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 자원이 많다. 문화관광지로는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과 부석면의 부석사가 대표적인데, 이곳에는 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 희방사와 희방계곡·희방폭포가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소백산의 철쭉이 유명하다. 소백산맥에는 흑석사·비로사·초암사 등의 산사들이 많이 있으며, 금선계곡·죽계계곡 등 계곡이 많다.
구성산의 구성공원은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시민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해우당과 만죽재가 있는 무섬마을(수도리)에는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 시가지 곳곳에 석불과 불상이 있으며, 휴천동 도로변에는 특이한 모습의 지석과 입석이 있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영주향교·풍기향교·순흥향교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백운동서원(소수서원으로 개칭)을 비롯해 오산서원·방산서원·구호서원 등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영주초등학교의 전신인 영천공립보통학교가 1911년에 개교했으며, 1928년에 영주공립농업실업학교, 1951년에 영주중학교가 설립되었다. 2017년 기준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27개소, 초등학교 19개소, 중학교 11개소, 고등학교 9개교, 대학 1개교, 대학교 1개교, 대학원 3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영주시민회관, 영주문화원 등이 있다. 공공도서관은 도립영주공공도서관·영주시립도서관·도립영주도서관풍기분관 3개관이 있으며, 총 1,179석이 있고 21만 8,651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2015). 문화행사로는 매년 5~6월경에 열리는 소백예술제와 소백산철쭉제, 10월에 열리는 소백문화제가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실시되었던 소백산철쭉제는 한동안 자연보호를 위해 산악인들에 의한 소규모 행사로 치러지다가 1997년에 재개되었다.
영주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소백문화제에서는 농악경연·음악공연·용꼬리따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순흥면의 줄다리기와 사천농악, 용꼬리따기, 씨름 등이 있다. 구전되는 설화로는 휴천동 뒷산의 뚜껑바위(두껍바위)에 관한 전설인 <뚜껑바위전설>과 <부석사연기설화>, <지네바위전설>, 서천에 관한 전설 등이 있다. 민요는 상당히 많이 전승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용꼬리따기노래>·<논매기소리>·<길쌈노래>·<바늘노래> 등이 있다.
2016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4개소, 의원 54개소, 특수병원 2개소, 요양병원 4개소, 치과병원 27개소, 한방병원 1개소, 한의원 26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014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4개소, 의원 53개소, 특수병원 2개소, 요양병원 4개소, 치과의원 23개소, 한방병원 1개소, 한의원 24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4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343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1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23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15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7개소, 보육시설 52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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