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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지리산 피아골 입구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545년(신라 진평왕 6)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이르기까지 선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절의 이름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큰 연못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법당을 세운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복원되었으나, 1910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그뒤 곧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다시 폐사되었으며, 오랫동안 사찰 내의 분규와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재건되지 못하다가 1965년 대웅전만 건립했다. 1981년 정부와 신도들의 지원을 받아서 구법당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대규모 대웅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뒤편에 있는 구례 연곡사 동 승탑(국보 제53호)를 비롯하여 구례 연곡사 북 승탑(국보 제54호)·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보물 제153호)가 남아 있고, 이 절과 좀 떨어진 곳에 구례 연곡사 3층석탑(보물 제151호)과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제152호) 등이 있다. 1967년 3층석탑을 해체·수리할 때 하층기단에서 동으로 만든 불입상 1구(동국대학교 박물관)가 발견되었다.
구례 연곡사 동 승탑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300cm. 기단부·탑신부·상륜부가 모두 8각으로 된 8각원당형 부도로 도선국사의 유골을 안치한 묘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대석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에는 운룡(雲龍)을 새기고 윗부분에는 사자(獅子)를 조각했다.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각 면에는 안상(眼象) 안에 무기를 쥐고 있는 팔부신장상이 표현되었다.
이와 같이 기단부에 팔부신장상이 나타나는 것은 9세기경의 통일신라시대 부도에서 보이는 특징이나, 시대가 내려가면서 팔부신장 대신에 주악천인상과 공양합장상으로 변했다. 상대석에는 반원형의 앙련(仰蓮)을 조각하고 윗면에는 높은 탑신 받침대가 있는데, 각 모서리마다 둥근 마디가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가릉빈가를 1구씩 배치했다. 탑신의 각 면에는 문비·삼족(三足)과 뚜껑이 있는 향완, 무장형(武將形)의 사천왕상 등이 얕게 조각되어 있다. 특히 문비는 장방형으로 자물쇠와 문고리가 함께 표현되었고 그 위를 화려한 꽃무늬[花紋]로 장식했는데, 이러한 문비 형식은 9세기경의 부도에 많이 나타나는 장식문양이다.
사천왕상은 무기를 들고 천의를 나부끼며 허리를 살짝 틀어 변화를 주면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옥개석에는 목조건축의 2중 서까래와 기왓골이 정교하게 모각되어 있으며, 추녀의 끝부분이 약간 위로 올라가 경쾌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는 날개를 편 봉황·앙화(仰花)·보륜으로 이루어졌다. 동부도는 각 부의 구조와 크기가 서로 비슷하여 안정된 비례감을 보여주며, 각 면에 나타나는 조각상이나 장식문양이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처리되어 있어 연곡사에 있는 3개의 부도 중에서 가장 조각솜씨가 뛰어난 작품이다. 따라서 그 조성연대는 8각원당형 부도가 유행하기 시작한 신라말 또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구례 연곡사 북 승탑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300cm. 네모난 지대석 위에 기단부·탑신부·상륜부가 차례로 놓여진 8각원당형 부도이다. 하대석은 구름무늬가 조각된 8각대석과 복련대석의 2단으로 구성되었다. 중대석은 3단 굄이 받치고 있고 각 면의 안상 안에는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조각이 장식되었다.
상대석에는 앙련이 돌려져 있고 윗면의 높은 받침대에는 둥근 마디의 기둥 사이로 가릉빈가가 1구씩 조각되어 있다. 이 가릉빈가상은 동부도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나 날개깃이 다소 도식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시대가 내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탑신의 각 면에는 문비·향완·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향완은 동부도와는 달리 악귀가 삼족의 향완을 떠받치고 있다. 옥개석에는 이중의 서까래·기왓골·막새가 모각되어 있고, 그 아랫면에는 비천이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앙화 위에 날개를 편 4마리의 봉황·연화석·보륜이 차례로 얹혀 있다.
이 부도는 동부도와 세부표현이 약간 다를 뿐 구조나 비례감, 양식적 특징 등이 거의 유사하므로 비슷한 시기에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보물 제154호. 높이 360cm. 이 부도는 탑신석에 '소요대사지탑'(逍遙大師之塔)과 '순치6년경인'(順治六年庚寅)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소요대사가 죽은 다음해인 1650년(효종 1)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8각원당형 부도를 기본적으로 따른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놓여 있다. 하대석은 2단 받침으로 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 반면 하단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윗면에 탑신을 중심으로 몰딩이 있고 그 주위로 홈이 깊게 파여 있다. 중대석은 원통형으로 위·아래 연꽃이 대칭으로 조각되어 있다. 8각의 상대석에는 앙련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한 둥근 형태의 굄이 있다.
탑신에는 7구의 신장상과 1구의 문비가 양각되어 있는데, 이 문비 안에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이 부도의 탑신석이나 다른 부분에 글자를 새기는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행한 형식이다. 신장상은 거의 환조에 가깝게 입체적으로 조각되었으나 조각기법에서 다소 서투른 면이 보인다. 옥개석은 윗면·아랫면에 서까래와 기왓골이 모각되어 있으며, 추녀 끝에는 모서리마다 귀꽃이 솟아 있다.
상륜부에는 앙화·복발·보개·보주가 차례로 놓여 있다. 서부도는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며 세부표현이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볼 때 연곡사의 다른 부도에 비해 시대가 가장 내려가는 것으로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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