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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가 한국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28년이다. 당시는 역기라 불리다가 8·15해방 후에 역도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31년에 중앙체육연구소와 조선일보 공동주최로 제1회 체력선수권대회가 열리면서 점차로 역도에 대한 관심과 참가가 활발해져갔다. 이후 1938년에는 조선체육회가 조선총독부의 압력으로 해산되면서 역기연맹이 조선중량거연맹으로 개칭되었으며 1940년에는 해산되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역도연맹이 부활되자 연맹은 1946년 제1차 전국역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이듬해 8월에는 국제역도연맹에 가입하는 등 활동 영역을 활발이 넓혀갔다.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 대회와 1956년 제16회 헬싱키 올림픽 대회에서 75kg급의 김성집이 2회 연속 3위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1960년 제17회 멜버른 올림픽 대회에서 67.5kg급의 김창희가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후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전까지 한국 역도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1988년 올림픽에서는 상당히 향상된 기량을 선보여, 비록 메달권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다음 대회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에서 56kg급의 전병관이 금메달을 획득하고 다른 여러 선수들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한국 역도는 새로운 중흥기를 맡게 되었다. 전병관은 1993년 5월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아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75kg급 장미란과 69kg급 이배영이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75kg급 장미란과 77kg급 사재혁이 금메달을 획득하여 한국 역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 이 대회에서 53kg급 윤진희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장미란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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