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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죽은 뒤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제1의 권위자로 활동했다. 이따금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을 쓰고 마르크스 저작의 새로운 판에 서문을 쓰면서, 마르크스의 미완성 초고와 다듬지 않은 노트를 바탕으로 〈자본론〉 제2·3권을 완성했다. 그동안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추종자들과 폭넓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마르크스의 이미지를 길이 남게 만들었고 '충실한 신도들' 사이에 복종심도 어느 정도 길러냈다.
그러나 갑자기 암에 걸려 활동을 중단했고 얼마 뒤 죽었다. 살아 있는 동안 엥겔스는 좀더 온건한 형태로 마르크스가 받은 것과 거의 같은 공격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영국신사의 풍모를 갖춘 도시풍의 인물이었으며 일상적으로는 삶에 대한 큰 열의를 가진 쾌활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모욕이나 심지어 폭력에 대해서도 곧바로 반응하는 결투예법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마르크스와 '동료관계'에서 남의 욕을 도맡아 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공격적이고 무자비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1848년에는 여러 친구가 마르크스에게 엥겔스와의 관계를 부인하라고 설득했으나 실패한 적도 있었다.
엥겔스가 정당하게 평가받은 공산주의 나라들을 제외하면 후세 사람들은 대체로 그의 중요한 역할을 분명히 밝히지도 않은 채 그와 마르크스를 한덩어리로 묶어 다루었다. 현재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차이를 밝히려는 시도가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를 위해 그의 저작들이 세밀히 연구되고 있다. 그결과 몇몇 학자는 엥겔스의 저작과 영향력이 그들의 관점으로 본 '진짜 마르크스주의'의 왜곡과 일탈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는 정작 마르크스는 엥겔스 때문에 자기 관념과 견해가 중요하게 왜곡되었다고 느낀 적이 없었음을 인정한다.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정책을 세우기 위한 긴밀한 공동작업을 보여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이의 편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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