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에블라

다른 표기 언어 Ebla

요약 시리아 서북부 알레포 남서쪽 53㎞ 지점에 위치했던 고대 도시.
지금의 Tall Mardīkh. Tell Mardikh.

에블라 전성기(BC 2600경~ 2240) 동안 시리아 북부, 레바논, 메소포타미아의 북부 지역 일부(지금의 이라크)를 지배했으며 이집트·이란·수메르 등과 같이 멀리 떨어진 나라들과도 무역 및 외교 관계를 가졌다.

에블라(Ebla)

ⓒ Anton_Ivanov/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64년 파올로 마티에가 이끄는 로마대학의 고고학 발굴단이 지금은 에블라의 유적지로 알려진 이 텔(tell), 즉 고분의 발굴을 시작했다.

1975년 마티에 발굴단은 BC 300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에블라 고문서들을 발견했다. 지금은 파괴되어버린 선반들 위에 당시 보관된 순서에 따라 원형 그대로 발견된 이 고문서들은 약 1만 5,000개에 달하는 명판 및 파편들로 이루어져 에블라에 대해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에블라가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비옥한 북시리아 평원에 위치한 배후 농경지 덕택이었다.

이곳에서는 보리·밀·올리브·무화과·포도·석류·아마 등이 재배되었고 양·염소·소·돼지 등이 사육되었다.

에블라는 지금의 레바논과, 은과 목재가 풍부하게 산출되고 터키 남동부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17개의 도시국가들을 지배했다. 전형적인 도시답게 에블라는 제조업과 교역의 중심지였다. 다마스쿠스 직물을 포함하여 아마포와 모직이 주요생산물이었다.

금·은·구리·주석·납의 용해와 합금은 2번째로 중요한 경제활동이었다. 또 목공과 올리브유·포도주·맥주의 생산도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에블라 경제에서 3번째 토대가 된 것은 무역이다. 직물과 제조품, 올리브유가 주요 수출품이었고 수입품으로는 금과 은, 구리, 주석, 보석용 원석, 양 등을 들 수 있다. 에블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개무역으로 부유해졌다. 이란·아나톨리아·키프로스에서 들여온 물자들은 배로 수메르·이집트와 같이 먼 지역에 있는 국가들로 운반되었다.

이집트와의 무역은 비블로스를 거쳐 이루어졌다. 에블라의 상업활동은 외교와 국지전에 의해 지원을 받으면서 전개되었다. 유프라테스 강과 갈리흐 강의 합류점에 위치하여 전략상의 요충도시였던 에마르는 왕실간의 결혼을 통해 에블라에 속해 있었다. 또 함마지는 이란에서 에블라의 상업적·외교적 동맹자였다. 다른 도시들과는 상업조약들이 체결되었다. 에블라의 상업활동에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가 유프라테스 강 남동쪽에 있던 마리였다.

2번에 걸쳐 에블라군이 마리로 진군했으며 잠시 동안 군사총독을 두어 마리를 지배하기도 했다.

세습권이 없는 왕들이 일정기간 동안 에블라를 통치했으며 장로회의가 함께 정책을 결정했다. 직물제조는 왕비의 책임이었다. 왕이 임명한 14명의 총독들이 에블라의 각 관구들을 통치했는데 그중 2곳은 에블라 시내에 있었다. 에블라의 종교는 다신교로 주로 가나안계였다.

도시의 수호신은 다비르였지만 다곤·시피시·하다드·바라투·아스타르테도 숭배되었다. 에블라의 언어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가나안 방언으로 북서지역 셈족의 언어와 가장 유사하다. 그러나 명판들에 새겨진 글자들은 아다브와 아부 사라비흐(지금의 이란)에서 출토된 명판들과 가장 비슷한 수메르 설형문자이다. 그 내용은 수메르인 교사들이 에블라에 건너왔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다브 근처에 '에블라의 운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에블라인들도 수메르로 건너갔다는 것을 증명한다.

원상태로 복구된 어휘와 음절문자표, 지명사전, 학생들의 연습교재 등을 보면 에블라가 중요한 교육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때때로 수메르에서 만들어진 단편적인 텍스트들을 복제한 에블라의 텍스트들이 완벽하게 남아 있어 수메르어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에블라의 번영이 아카드 왕조(BC 2350경~2195)의 관심을 끌었다.

아카드 왕조의 사르곤이 에블라를 점령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발굴을 통해 드러난 것들을 보면 의심스럽다. 이 도시를 폐허로 만든 대화재는 사르곤의 손자 나람 신(BC 2240경)의 공격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불모지화한 250년이 지난 뒤 일단의 아모리족이 에블라를 약탈하고 자신들의 왕조를 세웠다.

아모리족은 궁전과 사원을 재건했으며 유적터에서는 어떤 왕의 동상도 발굴되었다. 도시는 부분적으로 번영을 되찾았으며 흐트프이브 레 파라오(BC 1765경 재위)의 뼈로 만든 왕홀은 이집트와의 관계가 재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에블라가 최종적으로 붕괴된 것은 BC 1650~1600년경 중동을 뒤흔든 대격변들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유래한 여러 기술과 전통들은 그후에도 시리아 문화 속에 계속 이어졌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다른 백과사전


[Daum백과] 에블라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