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미상 |
---|---|
사망 | 303(?), 이탈리아 포르미아 |
요약
에라스무스는 중세 독일에서 함께 존경받은 14명의 거룩한 수호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할 때 에라스무스는 포르미아의 주교였는데, 그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시리아의 주교였으며, 레바논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고문을 기적적으로 견뎌내고 포르미아까지 천사의 인도를 받은 후 그곳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그는 시리아인인 안티오크의 성 에라스무스와 혼동되어,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이들이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후기의 전설들은 그가 창자를 빼내는 순교를 당했다는 주장을 첨가한다. 그래서 창자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를 거룩한 수호성인으로 여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590~604 재위)에 의하면, 그의 유골은 포르미아 성당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842년 사라센인들이 포르미아를 파괴한 뒤 에라스무스의 유해는 이탈리아 가에타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그는 수호성인으로 칭송받았다.
선원들에 대한 보호를 나타내는 가시적 표시인 성 엘모의 불(폭풍이 치는 날 배의 돛대 위에 빛의 끄트머리처럼 보이는 빗살 같은 방전을 동반하는 불꽃)과 관련이 있다. 에라스무스는 중세 독일에서 함께 존경받은 14명의 거룩한 수호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할 때 에라스무스는 포르미아의 주교였는데, 그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590~604 재위)에 의하면, 그의 유골은 포르미아 성당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842년 사라센인들이 포르미아를 파괴한 뒤 에라스무스의 유해는 이탈리아 가에타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그는 수호성인으로 칭송받았다.
몇 가지 날조된 문서로 인해 그에 대한 전설은 윤색되었다. 이 문서들에 의하면 그는 시리아의 주교였으며, 레바논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고문을 기적적으로 견뎌내고 포르미아까지 천사의 인도를 받은 후 그곳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그는 시리아인인 안티오크의 성 에라스무스와 혼동되어,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이들이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후기의 전설들은 그가 창자를 빼내는 순교를 당했다는 주장을 첨가한다. 그래서 창자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를 거룩한 수호성인으로 여긴다. 엘모는 성 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의 이탈리아식 표기 산트 에르모(Sant' Ermo)에서 파생된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이름에는 라무스·에라무스·에르무스·에르모·텔모 등이 있다. 그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은 〈성인행전 Acta Sanctorum〉과 R. 플라홀트의 〈성 에라스무스 S. Erasme〉(1895)에 수록되어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