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삼국시대에는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매성군 또는 마홀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 들어 947년(정종 2)에 견주군으로 개칭했다.
조선 건국 후 1394년(태조 3)에 수도를 한양에 정하고 한성부를 설치하게 되자, 한양부를 동촌 대동리(지금의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항골)로 옮기고 양주로 강등했으며, 얼마 후 다시 읍의 중심지를 견주의 옛 터(지금의 주내면 고읍리)로 옮기고 1413년(태종 13)에 양주도호부로 승격했다.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하고 진(鎭)을 두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양주를 없앴다가 1506년(중종 1)에 복구하면서 중심지를 불곡산 남쪽으로 옮겼다. 양주의 별호는 광릉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한성부 양주군, 1896년에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두입지인 신혈면을 고양군에, 산내면과 청송면을 포천군에 이관하고, 광주의 비입지인 초부면을 편입했다.
1914년 군면폐합으로 백석면·이담면·장흥면은 그대로, 읍내면·고주내면이 주내면으로, 천천면·회암면·어등산면이 회천면으로, 현내면·묵은면·석적면(일부)이 은현면으로, 석적면(일부)·광석면이 광적면으로, 시북면·둔야면이 시둔면으로, 내동면·별비면(일부)이 별내면으로, 진벌면·접동면·별비면(일부)이 진접면으로, 건천면·진관면이 진건면으로, 하도면·상도면이 화도면으로, 화공면, 오부면, 광주군 동부면 일부가 와부면으로, 미음면·금촌면·상도면이 미금면으로, 망우리면·구지면이 구리면으로, 해등촌면·노원면이 노해면으로 통합되었다.
1938년 군청을 주내면에서 시둔면으로 옮기면서 양주면으로 개칭하고, 1942년에 양주면을 의정부읍으로 승격시켰다. 1946년에는 파주군의 남면을 편입했으며, 1963년 이담면을 동두천읍으로 승격하고, 수동면을 새로 설치했으며, 의정부읍을 시로 승격시켜 양주군에서 독립했다. 또 같은 해에 서울에 연접한 노해면과 구리면의 5개리를 서울특별시로 이관했다. 1973년에는 구리면이 읍으로, 1979년에 미금면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었으며, 1980년에 구리읍·미금읍과 별내면·진접면·진건면·수동면·화도면·와부면을 분리하여 남양주군을 신설했다.
1981년에 동두천읍도 시로 승격·분리되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는 등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서울 및 수도권의 도시화에 따라 행정구역의 잦은 변화를 겪어왔다. 1985년 회천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7년 파주군 광탄면 기산리 일부가 양주군 백석면으로 편입되었다. 2000년 주내면이 양주읍으로 승격했고, 2001년 백석면이 백석읍으로 승격했다. 2003년 10월 양주군에서 양주시로 승격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