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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

다른 표기 언어 楊州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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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경기도 중북부
인구 269,658 (2024)
면적 310㎢
행정구역 1개읍 4개면 6개동
사이트 http://www.yangju.go.kr/site/yangju/<

요약 경기도 중북부에 있는 시. 조선시대에 양주도호부·양주군이었던 지역이다. 수도권의 도시화로 행정구역의 잦은 변화를 겪어왔다. 1963년 의정부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80년에는 2개읍 6개면 일대를 남양주군으로 신설하여 분리했다. 1981년에는 동두천읍도 시로 승격·분리되었다. 2003년 양주시로 승격되었다. 면적 310㎢, 인구 269,658(2024).

경기도 중북부에 있는 시. 의정부시·구리시·동두천시·남양주시가 독립·분리됨에 따라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백석읍·은현면·남면·광적면·장흥면·양주1동·양주2동·회천1동·회천2동·회천3동·회천4동 등 1개읍 4개면 6개 동리가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17개). 시청소재지는 경기도 양주시 양주시 부흥로 1이다. 면적 310㎢, 인구 269,658(2024).

양주시

경기도 양주시 행정구역

ⓒ 장길산/wikipedia | Public Domain

연혁

삼국시대에는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매성군 또는 마홀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 들어 947년(정종 2)에 견주군으로 개칭했다.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하고 진(鎭)을 두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양주를 없앴다가 1506년(중종 1)에 복구하면서 중심지를 불곡산 남쪽으로 옮겼다. 양주의 별호는 광릉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한성부 양주군, 1896년에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두입지인 신혈면을 고양군에, 산내면과 청송면을 포천군에 이관하고, 광주의 비입지인 초부면을 편입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백석면·이담면·장흥면·주내면·회천면·은현면·광적면·시둔면·별내면·진접면·진건면·화도면·와부면·미금면·구리면·노해면으로 개편되었다. 1938년 군청을 주내면에서 시둔면으로 옮기면서 양주면으로 개칭하고, 1942년에 양주면을 의정부읍으로 승격시켰다.

1946년에는 파주군의 남면을 편입했으며, 1963년 이담면을 동두천읍으로 승격하고, 수동면을 새로 설치했으며, 의정부읍을 시로 승격시켜 양주군에서 독립했다. 또 같은 해에 서울에 연접한 노해면과 구리면의 5개리를 서울특별시로 이관했다. 1973년에는 구리면이 읍으로, 1979년에 미금면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었으며, 1980년에 구리읍·미금읍 2개읍과 6개면을 분리하여 남양주군을 신설했다.

1981년에 동두천읍도 시로 승격·분리되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는 등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서울 및 수도권의 도시화에 따라 행정구역의 잦은 변화를 겪어왔다. 1985년 회천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7년 파주군 광탄면 기산리 일부가 양주군 백석면으로 편입되었다. 2000년 주내면이 양주읍으로 승격했고, 의정부시에 있던 군청사를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2001년에는 백석면이 백석읍으로, 2003년 10월에는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했다.

인구

1981년 동두천읍이 시로 승격·분리되었으나, 교통이 발달하고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점차 증가했다. 1981년 7만 6,636명이었던 인구가 1990년 8만 4,678명으로 증가해 1981~90년 사이에 약 10.5%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 2000년 12만 3,267명, 2005면 16만 7,248명, 2010년 20만 4,438명으로 꾸준하게 증가해왔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6만 9,658명으로 1990년에 비해 약 140% 가량 증가했다.

인구의 증가에 따라 가구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1990년 2만 1,839가구였던 것에서 2000년 3만 8,467가구, 2005년 5만 8,570가구, 2010년에는 7만 5,924가구로 증가했다. 2020년 가구는 9만 7,874가구를 기록했다. 가구당 인구는 1990년 3.9명에서 2020년 기준 2.35명으로 감소하여 핵가족화의 경향이 나타났다. 읍면동별 인구를 살펴보면 옥정2동(5만 2,551명)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며, 뒤이어 양주2동(5만 517명)·회천2동(3만 7,772명)·옥정1동(2만 9,713명) 순으로 분포한다. 양주1동(4,754명)에 가장 적은 인구가 거주하며, 가구수도 2,468가구로 전체 가구수의 3%에 불과하다(2024).

연혁

삼국시대에는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매성군 또는 마홀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 들어 947년(정종 2)에 견주군으로 개칭했다.

조선 건국 후 1394년(태조 3)에 수도를 한양에 정하고 한성부를 설치하게 되자, 한양부를 동촌 대동리(지금의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항골)로 옮기고 양주로 강등했으며, 얼마 후 다시 읍의 중심지를 견주의 옛 터(지금의 주내면 고읍리)로 옮기고 1413년(태종 13)에 양주도호부로 승격했다.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하고 진(鎭)을 두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양주를 없앴다가 1506년(중종 1)에 복구하면서 중심지를 불곡산 남쪽으로 옮겼다. 양주의 별호는 광릉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한성부 양주군, 1896년에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두입지인 신혈면을 고양군에, 산내면과 청송면을 포천군에 이관하고, 광주의 비입지인 초부면을 편입했다.

1914년 군면폐합으로 백석면·이담면·장흥면은 그대로, 읍내면·고주내면이 주내면으로, 천천면·회암면·어등산면이 회천면으로, 현내면·묵은면·석적면(일부)이 은현면으로, 석적면(일부)·광석면이 광적면으로, 시북면·둔야면이 시둔면으로, 내동면·별비면(일부)이 별내면으로, 진벌면·접동면·별비면(일부)이 진접면으로, 건천면·진관면이 진건면으로, 하도면·상도면이 화도면으로, 화공면, 오부면, 광주군 동부면 일부가 와부면으로, 미음면·금촌면·상도면이 미금면으로, 망우리면·구지면이 구리면으로, 해등촌면·노원면이 노해면으로 통합되었다.

1938년 군청을 주내면에서 시둔면으로 옮기면서 양주면으로 개칭하고, 1942년에 양주면을 의정부읍으로 승격시켰다. 1946년에는 파주군의 남면을 편입했으며, 1963년 이담면을 동두천읍으로 승격하고, 수동면을 새로 설치했으며, 의정부읍을 시로 승격시켜 양주군에서 독립했다. 또 같은 해에 서울에 연접한 노해면과 구리면의 5개리를 서울특별시로 이관했다. 1973년에는 구리면이 읍으로, 1979년에 미금면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었으며, 1980년에 구리읍·미금읍과 별내면·진접면·진건면·수동면·화도면·와부면을 분리하여 남양주군을 신설했다.

1981년에 동두천읍도 시로 승격·분리되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는 등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서울 및 수도권의 도시화에 따라 행정구역의 잦은 변화를 겪어왔다. 1985년 회천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7년 파주군 광탄면 기산리 일부가 양주군 백석면으로 편입되었다. 2000년 주내면이 양주읍으로 승격했고, 2001년 백석면이 백석읍으로 승격했다. 2003년 10월 양주군에서 양주시로 승격했다.

자연환경

전반적인 지세는 추가령구조곡이 시의 중동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중앙부가 저평하며, 동쪽과 서쪽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시의 동쪽에는 천보산맥이 뻗어 있어 칠봉산(506m)·천보산(337m) 등이 솟아 시경계를 이루며, 서쪽에는 감악산(675m)·노고산(401m)·앵무봉(622m)·형제봉(545m) 등이, 남쪽에는 상장봉(534m)·도봉산(717m)·사패산(552m) 등이 솟아 있다.

감악산

ⓒ 연합뉴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밖에 도락산(441m)·불국산(361m)·챌봉(516m) 등이 시내 곳곳에 솟아 있다. 주요하천으로는 강화천과 그 지류인 청담천이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북류해 한탄강으로 흘러든다. 청담천 연변에는 범람원과 낮은 구릉의 저지대가 펼쳐져 있다. 화강암 지역에 침식분지로 발달한 이 저지대는 경기편마암복합체의 변성암에 형성된 동두천시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한탄강으로 연결된다. 그밖에 곡릉천이 남부 산지 사이를 곡류해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기후는 중부 내륙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한서의 차가 심하다. 연평균기온 12.2℃ 내외, 1월평균기온 -2.1℃ 내외, 8월평균기온 26.2℃ 내외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436.3㎜ 정도로 한국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곳 중의 하나이다.

인구

1981년 동두천읍이 시로 승격·분리되었으나, 교통이 발달하고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점차 증가했다. 1981년 7만 6,636명, 1990년 8만 4,678명으로 1981~90년에 약 10.5%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가구수도 1981년 1만 6,215가구에서 1990년 2만 1,839가구로 약 34.7%나 증가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6만 9,657명이다. 2020년 기준 가구수는 9만 7,874가구이다. 인구이동은 전입이 3만 7,227명, 전출이 2만 9,974명으로 전입이 많다.

산업과 교통

총경지면적 42.92㎢ 가운데 논이 20.12㎢, 밭이 22.80㎢, 과 밭이 논보다 다수 많으며, 경지율은 13%이다(2013). 강화천과 청담천 연안의 충적지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나, 근래에는 쌀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 각종 채소류와 인삼·들깨·참깨 등의 특용작물재배가 근교농업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한우·젖소·돼지·닭의 가축사육도 매우 활발하다.

그러나 젖소사육은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 증가해오다가 초지조성에 의한 사료 확보가 어려워 감소하고 있다. 2005년 사육호수 242호에서 2013년 기준 158호로 35% 가량 감소했다. 임야율은 53.5%이다. 밤·도토리·표고버섯·대추·은행·잣 등의 임산물이 많이 생산되는데, 특히 양주지방에서는 예로부터 밤이 많이 생산되어왔다.

경공업이 산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노동집약적인 섬유 및 의류제조업이 대부분이다. 장흥면 울대리에서는 고려말의 청자,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 등의 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부곡리에서는 도자기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의정부와 동두천에 가까워 상설시장은 없고 회천읍·남면·광적면에서 5일 정기시장이 열린다.

경원선이 시의 중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서울교외선이 남서쪽의 장흥면을 지난다. 주요역은 경원선의 주내역·덕정역, 서울교외선의 일영역·송추역 등이다. 경원선과 나란히 지나는 의정부 전곡을 잇는 국도는 '평화로'(平和路)라고 하며, 도로변에 공장이 많아 교통량이 많다. 의정부와 고양을 잇는 국도는 주말에 특히 행락객들의 차량으로 교통혼잡이 심하다. 그밖에 포천과 파주, 연천과 고양 등을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서울과는 1시간 이내의 거리이다. 도로총길이 397.42㎞, 도로포장률 80.2%이다(2013).

양주역

ⓒ Baek Seung Woon/wikipedia | CC-BY-SA-2.0

유물·유적·관광

국가지정문화재(보물 3, 사적 3, 천연기념물 1, 중요민속자료 1, 중요무형문화재 2), 지방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6, 기념물 8, 민속문화재 1, 무형문화재 1), 문화재자료 7점이 있다.

회암사지부도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부도(조선), 보물 제388호, 및 쌍사자 석등, 보물 3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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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로는 회천읍 회암리에 자리한 회암사의 회암사지선각왕사비(檜巖寺址禪覺王師碑, 보물 제387호)·회암사지부도(檜巖寺址浮屠, 보물 제388호)·회암사지쌍사자석등(檜巖寺址雙獅子石燈, 보물 제389호)·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등이 있다.

능묘로는 장흥면 일영리의 온릉(溫陵, 사적 제210호), 석현리의 권율장군묘(權慄將軍墓, 경기도 기념물 제2호), 삼하리의 이수광선생묘(李睟光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제49호), 광적면 효촌리의 백인걸선생묘(白仁傑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제58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주내면 유양리의 양주향교(楊州鄕校), 은현면 선암리의 송질사당(宋軼祠堂), 주내면 만송리의 양효공사우(良孝公祠宇)가 있다.

그밖에 백석면 연곡리의 해유령전첩지(蟹踰嶺戰捷地, 경기도 기념물 제39호), 남면 황방리에 양주남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8호), 양주별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양주소놀이굿(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등이 있다. 서울교외선이 지나는 장흥면에는 송추유원지·일영유원지·장흥유원지가 있다. 장흥면은 한강 지류인 곡릉천 상류에 속하며, 면의 동부에 북한산국립공원이 있다. 음식점·수영장·숙박시설·전원주택 등이 들어서 서울 주변의 위락지구로 발전하고 있다. 칠봉산에는 소군곡·청풍곡·무자곡 등의 계곡과 회암사가 있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양주향교가 있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21년에 설립된 유양보통학교(지금의 유양초등학교)이며, 이후 가납보통학교·백석보통학교·삼상보통학교 등이 개교했다. 2018년 기준 유치원 49개소, 초등학교 33개소, 중학교 10개소, 고등학교 7개교, 전문대학 1개교, 대학교 2개교가 있다. 1987년에 설립된 양주문화원은 유물·유품 전시회, 향토문화강좌, 유적지순례 등의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0년 남면에 건립된 무호정에서는 궁술연마와 국궁 보급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양주별산대놀이·양주소놀이굿·줄불놀이 등이 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주내면 유양리에서 조선시대 중기부터 전승되어온 가면극 중의 하나로 해마다 사월초파일, 오월단오 및 추석에 주로 마을의 노천에서 연희되고 있다. 이 놀이는 거드름춤과 깨끼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짓이 유연한 것이 특색인데, 덕담과 재담으로 서민의 애환을 풍자하고 있다. 양주소놀이굿은 백석면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설화로는 <장자못전설>·<아기장수전설>·<사찰연기설화> 등이 전해지며, 민요로는 <시집살이노래>·<바느질노래>·<닐니리야>·<쌍가락지노래> 등의 부녀요와 <모내기소리>·<논매기소리>·<밭갈이소리> 등의 노동요가 전해지고 있다.

2017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5개소, 의원 65개소, 특수병원 1개소, 요양병원 10개소, 치과병원 40개소, 한의원 26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6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252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1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61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10개소, 보육시설 252개소, 아동복지시설 15개소, 장애인복지시설 9개소가 있다.

양주꿈나무도서관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양주꿈나무도서관

ⓒ hyolee2/wikipedia |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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