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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미타암 석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입상.
보물 제998호. 총높이 205㎝, 대좌높이 48㎝. 천연석굴의 입구로부터 약 9m 떨어진 곳에 석단을 마련하고 불상을 봉안했는데, 불신·광배·대좌가 하나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른손 엄지와 둘째 손가락을 맞댄 채 가슴 앞으로 들어올려 설법의 수인(手印)을 하고, 왼손은 몸 옆으로 내리고 있다.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마치 큰 모자를 쓴 듯이 머리가 두껍게 형식적으로 표현되었고, 높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얼굴은 둥글고 턱이 커서 양감이 있으나 이목구비의 묘사가 세밀하지 못하다.
상체는 어깨가 넓고 살쪘으며, 하체는 빈약한 편이다. 통견(通肩)의 법의가 어깨에서 한 번 젖혀진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된 형식이며, 넓게 드러난 가슴에는 내의와 띠매듭을 표현했다. 가슴에서 옷단까지 신체 전면에 U자형의 옷주름이 도드라진 선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한 줄 건너 주름이 중간에서 끊기고 있으며 옷이 밀착되어 양 다리의 굴곡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옷주름 표현은 통일신라 8세기말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률사금동약사불입상을 연상시킨다. 광배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몸 주위에 2중의 도드라진 선을 돌려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고, 이 2중의 선 사이에는 꽃무늬를 배치했으며 그밖에는 화염무늬를 돌렸다. 대좌는 안상(眼象)이 새겨진 사각형의 대석(臺石) 위에 단판앙복련(單瓣仰伏蓮)을 아래위로 부조한 2중의 연화좌이다.
이 상은 하나의 돌로 광배와 대좌가 이루어졌으나 불상의 자세, 착의법, 광배와 대좌 형식 등이 719년에 만들어진 감산사석조아미타불입상과 거의 유사하며, 옷주름이나 띠매듭 등의 세부표현은 백률사금동약사불입상과 유사하다. 또한 조각기술면에 보이는 다소 경직된 면은 감산사불입상 계통의 양식이 좀더 토착화된 것으로 제작연대는 8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이 상이 있는 석굴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양산 동북쪽에 있다는 포천산(布川山) 석굴로 짐작되며, 5명의 비구가 아미타를 염불하다가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되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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