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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군

다른 표기 언어 楊口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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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중북부
인구 20,975 (2024)
면적 701.53㎢
행정구역 1개읍 4개면
사이트 http://www.yanggu.go.kr/

요약 강원특별자치도 중북부에 있는 군. 태백산맥의 분수령에 자리하고 있어 군 전역이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한반도의 정중앙에 있으며, 휴전선에 접해있어 국방상 중요한 요지이며 군부대가 많이 입지해 있다. 양구읍에는 면회인을 상대로 서비스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양구쌀은 예부터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고랭지채소도 재배된다. 면적 701.53㎢, 인구 20,975(2024).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중북부에 있는 군. 내륙산간에 있는 산세가 험준하고 한적한 고장으로 강원특별자치도에서 면적은 가장 작지만 국방상 중요한 요지이다. 한반도의 4극점 기준 정중앙 지점에 있는 군이다. 양구읍·국토정중앙면·동면·방산면·해안면 등 1개읍 4개면 60개 동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77개리). 군청소재지는 양구읍 하리이다. 면적 701.53㎢, 인구 20,975(2024).

연혁

양구읍의 파로호 일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어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거주가 시작된 곳임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요은홀차(要隱忽次) 또는 양구군(楊口郡)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양록군(楊麓郡)으로 개칭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양구현(楊溝縣)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춘천의 속현이 되었다. 1106년(예종 1)에 양구현(楊口縣)으로 개칭했다.

조선에 들어 1393년(태조 2)에 양구현을 분리하여 감무를 파견했다가 1413년(태종 13)의 군현제 개편으로 현감이 파견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424년(세종 6)에는 방산현(方山縣)과 해안소가 편입되어 서북쪽과 동북쪽 영역이 넓어졌다.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1895년에 춘천부 양구군, 1896년에 강원도 양구군이 되었다. 1906년의 월경지 정리로 군의 면적이 북쪽으로 확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군내면·서면이 군내면으로, 남면·하동면이 남면으로, 상동면이 동면으로 개편되었다. 1917년에 군내면이 양구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63년 북면이 양구면에 편입되었고 양구면은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5년 해방되면서 양구군은 북한에 속했다가 1953년 휴전협정으로 수입면을 제외한 6개면에 군정을 실시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시행으로 해안면이 인제군으로 이관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지금의 해안면 일대가 다시 양구군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에 해안면으로 승격했다. 1986년에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해 화천 댐의 물을 방류함에 따라 드러난 파로호 바닥에서 한반도 구석기문화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구석기 유적이 대량 발굴되었다.

도차원에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6~2025년)에 춘천과 속초를 잇는 동서고속화철도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춘천·화천·양구·인제·속초 구간이 예비 후보에 올라와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2010년에는 양구읍 하리에 강원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되어 개교했다.

2002년 인공위성 측정 결과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가 독도(동단), 평안북도의 마안도(서단), 제주 마라도(남단),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면(북단)을 경계로 한 한반도의 4극 지점에서 정중앙 지점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행정구역 변경이 추진되어 2021년 1월 1일 남면의 명칭이 '국토정중앙면'으로 변경되었다.

인구

수복 이후 월남민과 군인을 중심으로 조금씩 늘어나던 인구가 1970년대 중반부터는 계속 감소해왔다. 1975년 인구 3만 9,019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1980년 3만 3,719명, 1985년 3만 860명, 1995년 2만 4,244명, 2000년 2만 3,483명, 2005년 2만 1,637명으로 감소해왔다. 이후로는 근소한 증가를 나타내어 2010년 2만 2,180명, 2015년 2만 4,089명을 기록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만 975명으로 1970년 인구와 비교했을 때 약 40%가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행정·상업·교통의 중심지인 양구읍에 전체 인구의 62%인 1만 3,429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요 농업지역인 국토정중앙면(3,257명)·동면(1,926명) 등에 상주인구율이 높다. 반면 방산면(1,181명)과 해안면(1,182명)에는 인구가 적게 분포한다(2024).

연혁

양구읍의 파로호 일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어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거주가 시작된 곳임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요은홀차(要隱忽次) 또는 양구군(楊口郡)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양록군(楊麓郡)으로 개칭했다. 이때 삼령현(三嶺縣 : 양구군 방산면 일대)·희제현·치도현 등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양구현(楊溝縣)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춘천의 속현이 되었다. 1106년(예종 1)에 양구현(楊口縣)으로 개칭하고, 낭천(狼川) 감무가 함께 다스렸다.

조선에 들어 1393년(태조 2)에 양구현을 분리하여 감무를 파견했다가 1413년(태종 13)의 군현제 개편으로 현감이 파견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424년(세종 6)에는 회양 소속 방산현(方山縣)과 춘천 소속 해안소가 편입되어 서북쪽과 동북쪽 영역이 넓어졌다.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1895년에 춘천부 양구군, 1896년에 강원도 양구군이 되었다. 1906년의 월경지 정리 때 회양의 두입지였던 수입면이 편입되어 군의 면적이 북쪽으로 확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북면·방산면·해안면·수입면은 그대로, 군내면·서면이 군내면으로, 남면·하동면이 남면으로, 상동면이 동면으로 통합 또는 개칭되었다. 1917년에 군내면이 양구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63년 북면이 양구면에 편입되었고 양구면은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5년 해방되면서 양구군은 북한에 속했다가 1953년 휴전협정으로 수입면을 제외한 6개면에 군정을 실시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시행으로 해안면이 인제군으로 이관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지금의 해안면 일대가 다시 양구군에 편입되어 해안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3년에 해안면으로 승격했다. 1986년에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해 화천 댐의 물을 방류함에 따라 드러난 파로호 바닥에서 한반도 구석기문화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구석기 유적이 대량 발굴되었다. 2002년 5월 인공위성 측정결과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가 한반도의 4극 지점에서 정중앙 지점으로 확인되어, 2021년 1월 1일 남면의 명칭이 '국토정중앙면'으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한반도의 척량산맥인 태백산맥의 분수령에 자리하고, 1,000m 내외의 높은 산들이 군 전역에 산재하고 있어서 대체로 험준한 내륙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가칠봉(加七峰 : 1,242m)·달산령(807m)·도솔산(兜率山 : 1,148m)·광치령(廣峙嶺 : 800m)·월명봉(719m)·사명산(四明山 : 1,198m) 등이 군 외곽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내부에 비봉산(飛鳳山 : 458m)·꽃봉(562m)·학령 등이 솟아 있다.

지혜산(智慧山 : 1,232m)에서 발원해 군의 중서부를 흐르는 수입천(水入川)과 도솔산에서 발원한 서천이 모두 파로호에 흘러든다. 해안면 일대에는 소양강 지류들의 차별침식으로 인해 형성된 해안분지(亥安盆地)가 나타나며, 소양강은 분지 동쪽의 좁은 협곡을 통해 인제군으로 남류한다. 하천유역에는 좁은 곡저평야가 분포하며, 중남부에는 비교적 넓은 양구분지가 펼쳐져 농경지로 이용된다.

소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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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서남부에 있는 파로호와 남부에 자리한 소양호는 인공호수로서 내륙 수상교통로로 이용될 뿐 아니라 경관이 수려하여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기후는 내륙 산간지방으로 대륙성기후의 특성이 나타나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기온 9.9℃ 내외, 1월평균기온 -6.4℃ 내외, 8월평균기온 26℃ 내외이며, 연강수량은 921.8㎜ 정도이다.

하반도 식생의 동서경계 지점에 자리하고 있어서 열목이·어름치·황쏘가리 등과 금강초롱·비로용담·장백제비꽃 등 희귀한 동식물이 많다. 2002년 5월 인공위성으로 측정한 결과 남면(현 국토정중앙면) 도촌리 산 48번지가 독도(동단), 평안북도의 마안도(서단), 제주 마라도(남단),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면(북단)을 경계로 한 한반도의 4극 지점에서 가장 한 가운데 있는 정중앙 지점으로 확인되었다.

인구

수복 이후 월남민과 군인을 중심으로 조금씩 늘어나던 인구가 1970년대 중반부터는 계속 감소하는 인구유출지역이다. 1970년대 이후의 연도별 인구변화를 보면 1970년 3만 8,976명, 1975년 3만 9,019명, 1980년 3만 3,719명, 1985년 3만 860명, 1990년 2만 8,649명, 2024년 2만 975명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2006년에 약 25.2%의 인구가 감소했으며 가구수는 1990년 7,136가구에서 2020년 10,842가구로 오히려 늘어났다. 남녀 성비는 106 : 100으로 남자가 많은데 이것은 이곳이 휴전선과 접해 있는 군사요지로 군부대가 많이 주둔하기 때문이다. 지역별로는 행정·상업·교통의 중심지인 양구읍에 57.1%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주요 농업지역인 국토정중앙면·동면 등에 상주인구율이 높다.

취락은 대부분 하천유역과 산록에 밀집되어 있으며, 괴촌이 일반적이다. 양구읍에는 군부대 면회인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 업소가 밀집해 있으며, 최근에 양구읍 하리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확대되고 있다. 상수도보급률 71.8%, 하수도보급률 74.4%이다(2006).

산업과 교통

경지면적은 49.76㎢로 경지율이 7%에 불과하지만 농업인구가 5,186명으로 전체인구의 21%를 차지하며 농업의존도가 높다. 논이 19.86㎢, 밭이 29.89㎢로 논보다 밭이 많은데, 이것은 이곳이 험준한 산간지역일 뿐만 아니라 주요 평야지역이 화천 댐의 건설로 수몰되었기 때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옥수수·콩·감자 등이며, 특용작물로 들깨·참깨·당귀가 생산된다. 쌀은 예로부터 질이 좋기로 이름 나 있다. 최근에는 고랭지채소와 약초 재배 면적이 늘고 있다. 군 전역에서 한우사육과 양돈·양계 등의 목축업이 행해지며 양구읍과 동면을 중심으로 양봉이 활발하다.

양구군 동면

강원 양구군 동면의 밭으로 일을 나온 농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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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업은 소양호와 파로호에서 잉어·쏘가리·붕어·빙어 등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내수면어업이 이루어지는데, 비교적 오염도가 낮다. 수입천에서는 특산어인 열목이와 어름치·황쏘가리 등이 서식한다. 임야면적은 564.19㎢로 군면적의 약 80%를 차지하며(2013), 주요 임산물은 송이버섯·밤·약초·산나물 등이다.

내륙산간지방으로 교통이 불편하여 광공업은 부진한 편이다. 군내에는 15개 광구가 있는데 2013년 기준 가행광구는 9개소이다. 이 광구는 고령토를 생산하고있다. 군내에는 13개 제조업체에서 214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으며, 양구읍·국토정중앙면에 주로 분포한다(2013). 상업활동은 1941년 파로호, 1973년 소양호가 생기면서 지역간의 왕래가 불편하게 되어 정기시장의 발달이 위축되었다. 양구읍의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공산품·일용품·지역산물 등이 거래되고 있다. 군부대가 많아 면회인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이 활발하다.

험준한 산맥과 내륙호수로 격리되어 있어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양구읍을 중심으로 국도와 지방도가 군내 읍·면 지역을 연결해주고 있다. 도로총길이 362.52㎞, 도로포장률 79.9%이다(2013). 북한 강원도와 이어졌던 31번 국도가 군의 남북방향으로 뻗어내리다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치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이어지며, 인제, 춘천을 잇는 국도가 군의 남부를 지난다. 춘천의 소양호 선착장에서 양구를 잇는 27㎞의 뱃길로 정기여객선이 1일 왕복 10회 운항되며, 파로호를 이용한 소규모의 수운도 이루어지고 있다.

유물·유적·관광

군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 기념물 1, 무형문화재 1), 문화재자료 3점이 있다.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6·25전쟁 당시 격전지로 문화유산이 적은 편이다.

고대리지석묘2호

고대리지석묘2호, 강원도 기념물 제9호, 양구선사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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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이 양구읍을 중심으로 많이 발굴되었는데, 상무룡리의 파로호 구석기 유적지에서는 3,620점에 달하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양구읍 고대리지석묘군(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제9호)·고대리2지구지석묘군(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110호)·공수리지석묘군(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109호) 등이 있다.

고대리유적지는 둘레 11.69m, 두께 25㎝의 화강암 거석을 기초로 한 높이 1.77m의 북방식 지석묘로 4,000년 전 부족국가의 형성과 생활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양구읍 하리에는 지석묘 15기를 모아 지석묘원을 조성해놓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암산·대우산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246호)에는 열목이·어름치·개느삼·금강초롱 등 희귀한 동식물이 많으며, 동면 팔랑리와 방산면 현리의 소나무는 수령이 300~500년 된 거목이다. 그밖에 양구읍에 양구향교·비봉산성지·노고성지 등이 있다. 웅장한 산세와 호수, 맑은 계곡과 폭포 등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승지가 많다.

양구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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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관광자원은 진산인 비봉산을 비롯하여 두타연·벽초연·팔랑폭포·직연폭포·후곡약수와 박수근화백동상 등이 있으며, 소양호와 파로호는 내륙수로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호반경관과 낚시터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 관광유람선 등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매년 관광객이 증가하여 연간 20만 6,369여 명이 이 군을 찾고 있다(2006).

교육·문화·의료·복지

배꼽축제

양구군이 한반도의 정중앙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배꼽축제에서 관광객들이 수상자전거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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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교육기관으로 비봉산 기슭에 양구향교가 있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1년에 세워진 양구보통학교이며, 그뒤 문등·임당·장평·용화·매동·무룡 보통학교가 차례로 문을 열었고, 1955년 양구중학교의 개교로 중등교육이 시작되었다. 2017년 기준 유치원 9개소, 초등학교 10개소, 중학교 6개소, 고등학교 3개교가 있다.

1966년 개원한 양구문화원은 향토문화축제인 양록제를 비롯해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향토자료의 발굴·조사와 출판에 힘쓰고 있다. 양록제는 1983년 이후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군민축제로 각종 민속놀이와 경연대회, 체육·문화 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그밖의 문화시설로는 1990년에 준공한 종합운동장과 공공도서관이 있다.

민속놀이는 세시놀이와 기줄싸움 등이 있으며, 마을단위로 동제와 부락제 등이 행해진다. 방산면 송현리의 동두보제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이 지방의 장수 박제룡이 쌓았다는 동두보에서 매년 4월 행해지는 풍농제이다.

설화는 주로 인물·지명에 얽힌 것이 많은데, <김현도현감의 효행설화>·<열녀박씨와 송아현의 정렬설화>·<대정리전설>·<몰구지전설>·<상통석굴전설> 등이 있다. 민요는 산간지방의 일반적인 특징인 노동요보다는 시사적이고 사상성 짙은 의식요가 많은데, 이것은 조선시대의 의병활동을 비롯해 격전지 주민의 의식이 표출된 것으로 보이며, 그밖에 <돌산령타령>·<줄다리기노래> 등이 있다.

2016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3개소, 의원 5개소, 치과병원 5개소, 한의원 4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8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아동복지시설 1개소, 노인복지시설 8개소, 장애인복지시설 2개소, 보육시설 16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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