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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01. 7. 25, 플랑드르 르케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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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36. 10. 9, 네덜란드 레이덴 근처 테일링겐 |
국적 | 독일, 바이에른 |
요약
바이에른 여공작, 홀란트·젤란트·에노의 여백작.
(프). Jacqueline de Bavire. (영). Jacoba of Bavaria.
1428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에게 세 백작령의 주권을 빼앗겼다. 이로써 부르고뉴는 저지대 국가들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젤란트·홀란트·에노의 백작 빌렘의 외동딸이자 상속녀로 1415년 투렌의 장과 결혼했으나 2년 뒤 남편을 잃었다. 1417년 그녀의 아버지가 죽자 독일 왕 지기스문트는 그녀의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녀의 삼촌인 바이에른의 요한을 지지했다.
1418년 3월 사촌인 브라반트 공작 얀 4세와 결혼한 후 홀란트에서 바이에른의 요한과 맞서 싸웠다. 1419년 삼촌인 부르고뉴 공작 장 덕분에 분쟁이 해결되었으나 이듬해 남편이 바이에른의 요한에게 홀란트와 젤란트를 저당잡힘으로써 바이에른의 요한이 이곳을 지배하게 되었다.
남편의 행동에 혐오감을 느낀 그녀는 에노로 갔으며 1421년 이혼하고 잉글랜드로 가 헨리 5세의 환영을 받았다. 1422년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와 결혼했는데, 2년 뒤 험프리 공작은 '저지대 국가'에 쳐들어가 잉글랜드와 부르고뉴의 동맹을 깨뜨렸다. 1424년 그녀는 험프리와 군대를 이끌고 에노로 돌아왔으나 험프리는 1425년 잉글랜드로 돌아가버렸다.
뒤이어 그녀는 대립 관계에 있던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에 의해 헨트에 억류되었다.
홀란트와 젤란트의 소유권이 필리프에게 넘어간 뒤(1425) 그녀는 헨트에서 탈출해 3년 동안 네덜란드에서 필리프의 세력에 대항해 싸웠다. 그러나 교황이 험프리와의 결혼을 불법이라 선포하자(1428. 1. 9) 그녀의 희망은 사라졌다. 결국 1428년 7월 3일 델프트 조약을 통해 필리프와 협정을 맺었으며 그에 따라 그녀는 백작의 칭호를 보유하는 대신에 세 백작령(홀란트·젤란트·에노)의 통치권을 필리프에게 넘겨주고 그의 동의 없이는 결혼할 수 없게 되었다.
필리프가 젤란트 출신의 보르셀렌 가문의 세 귀족에게 홀란트와 젤란트의 세입을 저당잡히자(1430), 그녀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인 조일렌과 신트 마르텐스데이크의 영주 프란시스와 몰래 결혼했는데 이는 홀란트에서 부르고뉴의 통치권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필리프는 프란시스를 감옥에 가두고(1432. 10) 그녀로 하여금 백작의 지위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1433). 그후 그녀는 바이에른 여공작과 오스트레반트(보헤미아에 있음) 여백작이 되었으며 1434년에는 프란시스와 재혼하도록 허락받았다. 자녀는 1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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