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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59. 9. 10, 독일 바이에른 뮌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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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38. 6. 14, 뮌헨 |
국적 | 독일 |
요약 바이에른을 근대화시킨 독일의 정치가.
사부타 출신 귀족의 아들인 몽줄라는 츠바이브뤼켄 공작 카를 2세 아우구스투스 밑에서 일했으며 1795년부터는 카를의 후계자인 막시밀리안 4세 요제프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막시밀리안 4세는 1799년 바이에른 선제후가 되었고 그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사이에 있는 바이에른을 독립국가로 만들려 했다.
때마침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자 1805년 그는 바이에른을 프랑스 편에 서도록 했다. 제2차 라인 연방에 가입한 바이에른은 국내정책에 대한 독립성은 보장되었지만,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할 수는 없었으며 군대는 라인 연방의 후원자인 나폴레옹이 관리했다. 몽줄라는 연방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매우 자유로운 정책을 펼 수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인 1814~16년 독일 국가들이 맺은 영토조약과 몽줄라의 의도와는 반대로 바이에른이 독일 연방(1815)에 가입한 사실은, 효과적인 완충국가를 건설하려던 그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보여주었다.
1803~17년에는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1807년부터 내무장관을 겸임해 1808년 바이에른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은 모든 시민의 최고 상소기관으로서 국책회의의 설치를 명시했고 농노제와 귀족의 면세제를 폐지했으며, 법 앞에서의 평등원칙을 선포했다. 또한 대의제 의회를 표방했으나 실제로 실현된 것은 전혀 없었다.
몽줄라는 바이에른에서 대의제를 실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으며 법으로 통제되는 관료제를 이상으로 삼았다. 1817년 관직에서 해임된 후 다시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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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몽줄라 드 가르느랭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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