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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별초

다른 표기 언어 夜別抄

요약 고려시대 무인집권기 때 최씨정권이 조직한 사병.

야별초는 1232년(고종 19) 강화도 천도문제가 논의되었을 때 그것을 반대했던 김세충(金世沖)의 지위가 야별초 지유였다고 하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에서 처음 보인다. 또한 〈고려사〉에 기록된 삼별초 관련기사를 보면, 처음에 최우(崔瑀)가 도적이 많은 것을 근심하여 용사를 모아 매일 밤 순행하여 단속하게 하면서 이를 야별초라 했고, 도적이 여러 도에서 일어남에 따라 별초를 나누어 파견하여 잡게 했으며, 점점 그 수가 많아지자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었고, 몽골에서 도망해온 고려인들을 모아 신의군이라 했으며, 좌별초·우별초·신의군을 합해 삼별초라 했다.

이 두 기록으로 보아 야별초는 최우가 집권을 시작한 1219년에서 강화도 천도가 논의되던 1232년 사이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씨정권의 사병으로 처음에는 야간에 순행하며 도적을 잡고 폭행을 금지시킬 목적에서 설치되었는데, 여기서 도둑이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정도를 벗어나 당시 중앙정부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일어난 백성들도 그 속에 포함되었던 것 같다.

그후 수가 많아지고 활동범위가 넓어져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졌으며, 성격이 비슷한 신의군과 합해져 삼별초를 이루었을 것으로 보인다.→ 삼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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