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555, 런던 |
---|---|
사망 | 1626. 9. 26, 런던 |
국적 | 잉글랜드, 영국 |
요약 영국의 신학자·궁정설교가.
영국성공회의 격변기에 성공회 교리를 옹호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1575년 케임브리지대학교 펨브로크 칼리지의 특별연구원으로 선임되었고, 1580년 부제로 임명되었다. 1589년부터 치체스터의 주교로 축성될 때(1605)까지 몇몇 교구에서 목회하다가 1609년 일리, 1619년 윈체스터로 옮겼다.
엘리자베스 1세가 교회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앤드류스에게 왕권과 결탁할 것을 요구하자, 그는 일찍이 솔즈베리와 일리의 관구장직을 거절했다.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다스렸던 1605~19년에는 왕가의 구호품 분배 관리직을 맡았고, 1619~26년에는 궁정교회의 수석사제로 있었다. 수사학에 정통했던 그는 달변가이며 학식 있는 궁정 설교가로 명성을 얻었다. 케임브리지에서 청교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칼뱅주의 교리와 청교도 개혁강령에 대해 조심스럽게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의 주요저작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의 작품들이다. 그 작품들을 통해 그는 로마 가톨릭 교리에 대해 분명히 비판적 태도를 취했고, 성공회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서술했다. 1605년 화약음모사건이 실패한 뒤 이를 기념할 때마다 설교한 내용 중에는 반(反)가톨릭 법률에 격노한 가톨릭교도들로 하여금 의회와 왕가를 해산시키게 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 설교들은 하느님이 국가와 교회를 모두 구원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의 설교와 저서 목록은 P.A.웰스비가 쓴 전기인 〈랜슬롯 앤드류스, 1555~1626 Lancelot Andrewes, 1555~1626〉(1958)에 수록되어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종교인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