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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국 매사추세츠의 유서깊은 가문.
이 가문 출신 사람들은 150년 이상 미국의 정치계·지성계에 크게 기여했다.
가문의 시조 헨리 애덤스는 1636년경에 영국에서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로 이주했으며, 존 애덤스(1735~1826) 이전에는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혁명기와 건국 초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존 애덤스는 미국의 제2대 대통령으로 활약했다(1797~1801). 그의 아내인 애비게일 애덤스(1744~1818)는 기지가 번득이며 문학적 재능과 정치적 통찰력이 엿보이는 수많은 편지를 남겼다(→ 애덤스). 존의 6촌인 새뮤얼 애덤스(1722~1803)는 혁명기 보스턴의 선동가로, 영국의 정책에 대한 저항을 끊임없이 조직해냈고 독립 쪽으로 용의주도하게 여론을 이끌었다.
존과 애비게일의 아들인 존 퀸시 애덤스(1767~1848)는 존 애덤스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제6대 대통령으로 파란 많은 4년을 지냈다(1825~29). 그는 대통령으로서보다는 플로리다를 획득하고 먼로주의를 선언하게 하는 등 탁월한 외교적 수완으로 명성을 날린 사람이다(→ 애덤스). 그는 미국 하원의원을 지내는 동안 노예제에 반대하는 탄원을 이끈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아들 찰스 프랜시스 애덤스(1807~86)는 의원이자 자유토지당 지도자로 노예제에 반대하는 투쟁을 계속했다(→ 애덤스). 남북전쟁 당시는 영국 주재 미국 공사로서 외교적 천재성을 발휘해 영국이 남부연합을 인정하거나 동맹을 맺지 못하도록 했다. 찰스 프랜시스 애덤스의 손자로 허버트 후버 행정부에서 해군장관을 지낸 찰스 프랜시스 애덤스 3세(1866~1954)를 제외하면, 애덤스 가문의 이후 세대들은 공직에 앉지 못했다.
찰스 프랜시스 애덤스 2세(1835~1915)는 사업가로 한때 유니언퍼시픽철도회사의 회장을 지냈고 은퇴한 뒤에는 부친의 전기를 썼으며 여러 역사적 주제들에 관한 저술활동을 했다. 그의 두 형제 헨리 애덤스(1838~1918)와 브룩스 애덤스(1848~1927)는 뛰어난 사회비평가이자 역사가였다. 특히 헨리 애덤스는 남북전쟁 이래 가장 위대한 미국 작가들 중 하나로 꼽힌다. 애덤스 가문에서는 그밖에도 유능한 변호사, 금융인, 기업경영인들이 나왔다. 이 가문의 신체적 특징(키가 작고 뚱뚱함)과 심리적 특징(내성적이고 죄의식이 강함), 그리고 지적 우수성은 수십 년 동안 두드러지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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