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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크마이온가

다른 표기 언어 Alcmaeonid family

요약 아테네의 유력 가문.

BC 6~5세기의 아테네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시조는 전설적 인물 알크마이온이다.

이 가문 출신인 메가클레스가 아르콘(집정관)을 지내던 때인 BC 632(?)년에 킬론이란 사람이 참주가 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의 추종자들이 신전의 제단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신성모독과 살인죄로 비난을 받은 알크마이온 가문 사람들은 이후 2세기 동안 정권다툼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가문 사람들은 추방당했으며, 그뒤 솔론이 집권했을 때(BC 6세기초) 돌아와 솔론의 개혁을 지지하는 당파를 이끌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가 된 BC 561~560년 이후 알크마이온 가문 사람들은 보수적인 귀족들과 힘을 합쳐 2번이나 그를 몰아내려 했으나 결국 추방당했다. 이들은 나중에 돌아왔으며 이 가문 출신인 클레이스테네스는 BC 525~524년에 아르콘을 지냈다. 그러나 BC 514년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 히파르코스가 살해당한 뒤 이들은 참주 히피아스에 의해 다시 추방되었다.

BC 513년 클레이스테네스는 자신들의 본거지인 보이오티아에서 가문 사람들을 이끌고 아티카를 침공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일파는 델포이의 신탁에 자극받은 스파르타인들에 의해 BC 510년 쫓겨났고, 알크마이온 가문은 화재로 파괴된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복구했다. 2년 뒤 클레이스테네스는 대규모 개혁을 단행해 아테네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알크마이온 가문이 추구한 정책은 그 다음 세대에는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이 가문 사람들은 마라톤 전투(BC 490) 때 페르시아와 결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모계 쪽으로 이 가문의 자손인 알키비아데스와 페리클레스를 제외하면 페르시아 전쟁 뒤에는 이들의 직계 자손들 가운데 이름을 떨친 인물이 없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에 스파르타는 아테네에서 알크마이온가의 추방을 요구해 페리클레스를 자극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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