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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 1864년 5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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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유적지 |
국가 | 미국 |
사이트 | http://www.arlingtoncemetery.mil |
요약
포토맥 강을 사이에 두고 워싱턴 D. C.와 마주보고 있다. 알링턴은 1864년 육군 장관의 명령에 따라 군사묘지가 되었다. 1864년 남군 포로가 처음으로 이곳에 묻힌 이후 독립전쟁 때 죽은 몇몇 장교들을 비롯해,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존 J.퍼싱 장군, 리처드 E.버드 제독,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로버트 E.피어리, 조너선 웨인라이트 장군, 조지 C.마셜 장군, 로버트 토드 링컨, 피에르 샤를 랑팡 소령,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존 F.케네디, 로버트 F. 케네디 등이 이곳에 묻혀 있다. 현재 16만 3,000명 이상의 병사가 묻혀 있는 묘역에는 1872년부터 전국의 국립묘지에 사용되기 시작한 단순한 묘비들이 끝없이 줄지어져 있다.
포토맥 강을 사이에 두고 워싱턴 D. C.와 마주보고 있다. 면적은 200㏊가 넘는다. 반원형으로 된 묘지 중에는 1802년 조지 워싱턴의 양자인 조지 워싱턴 파크 커티스의 사유지에 세워진 저택이 있다. 이 저택은 아테네에 있는 테세움을 본떠서 건축되었다고 한다.
강 건너편에서도 8개의 흰 기둥으로 받쳐진 이 건물의 현관을 볼 수 있다. 현재 이 건물은 알링턴하우스라고 불리며 로버트 E.리 장군의 기념관으로 쓰인다. 리는 1831년 매리 앤 랜돌프 커티스와 이 저택에서 결혼했다. 1861년 4월 22일 남북전쟁에 참전한 남부연합군을 지휘하기 위해 리가 이곳을 떠난 후에는 북군이 점령해서 저택을 본부로 하고 주변의 땅을 야영지로 썼다.
알링턴은 1864년 육군 장관의 명령에 따라 군사묘지가 되었다. 조지 워싱턴 커티스 리는 수년 간의 소송 끝에 미국 정부가 이곳을 불법침입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내고 저택의 잔여재산 수령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게 되었으나 1883년 그는 이 권리를 15만 달러에 정부에 양도했다.
1864년 5월 13일 인근 지방병원에서 죽은 남군 포로가 처음으로 이곳에 묻혔다. 미국독립전쟁 때 죽은 몇몇 장교들을 비롯해,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많은 군사지도자들과 저명인사들도 이곳에 묻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존 J.퍼싱 장군, 리처드 E.버드 제독,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로버트 E.피어리, 조너선 웨인라이트 장군, 조지 C.마셜 장군, 로버트 토드 링컨, 피에르 샤를 랑팡 소령,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존 F.케네디, 로버트 F. 케네디 등이다.
무명용사 묘지는 조성 당시 제1차 세계대전 전몰군인의 묘역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전쟁에서 죽은 이름 모르는 병사들도 묻혀 있다. 가까이에 북군육해군군인회의 노력으로, 1920년 5월 15일 준공된 원형기념극장이 있는데 전몰용사기념일 행사를 갖는 장소로 이용된다. 이 원형기념극장은 천연의 계단식 원형지역에 흰 대리석 구조물을 지붕없이 감싸 올린 것으로 아테네에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과 프랑스 오랑주에 있는 로마 극장을 본뜬 건물이다.
현재 40만명 이상의 병사가 묻혀 있는 묘역에는 1872년부터 전국의 국립묘지에 사용되기 시작한 단순한 묘비들이 끝없이 줄지어져 있다. 이오지마에 국기를 꽂는 해병대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미국 해병대 전쟁기념비가 묘지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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