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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54. 8. 2, 프랑스 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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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25. 6. 14, 미국 메릴랜드 프린스조지스 |
국적 | 프랑스/미국 |
요약 프랑스 태생 미국의 공학자·건축가·도시설계가.
미국 수도인 워싱턴 D. C.의 기초도면을 설계했다.
랑팡은 1771년부터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에 다니면서 아버지 밑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776년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혁명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했으며 군대에서 쌓은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의회에 의해 1783년 공병(工兵) 소령에 임명되었다. 그는 혁명군 퇴역장교들의 모임인 신시내티 협회의 메달과 상장을 도안했고 파리로 돌아가서 협회의 프랑스 지부 결성을 도왔다.
1784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서 뉴욕 시에 정착했다. 거기서 건축일을 했고 오래된 시청사(市廳舍)를 고쳐 미국 의회의 연방청사로 만들었다(1787). 그의 첫번째 중요한 건축작품인 이 청사는 랑팡 자신이 귀화한 미국을 기리는 뜻에서 도리아식 기둥에 별을 장식해 넣은 건물이다. 그는 또 필라델피아에 맨사드(mansard) 양식의 웅대한 모리스 관(館)을 설계했는데 이 건축물은 1794년 착공되었으나 완공되지는 못했다.
의회가 포토맥 강변에 연방 수도를 세울 것을 결정한 뒤 워싱턴 대통령은 1791년 랑팡에게 건물의 설계를 맡겼다. 그는 격자 모양으로 된 불규칙한 직4각형 구획에 넓은 대각선 대로가 겹쳐 있는 설계도를 만들었다. 그 설계도는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관저에 초점을 두고,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여러 4각형·원형·3각형의 공간을 두어 기념탑과 분수대를 세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고르지 않은 지면을 잘 이용하고 나중의 교통량을 고려해서 만들어졌다. 국무장관 토머스 제퍼슨은 랑팡에게 유럽 여러 도시들의 지도를 주어 참고하게 했으며 랑팡은 그들 중 어느 한 도시를 본뜨기보다 여러 것에서 착상을 얻었다. 그의 설계는 앙드레 르 노트르가 베르사유 설계에 사용한 바로크 양식에 영향을 받았고 크리스토퍼 렌 경과 존 이블린의 런던 설계와 유사한 점이 보인다(→ 도시계획).
1792년 그는 시의 관리들에게 완고하게 대항한 까닭으로, 특히 대로를 만들기 위해 워싱턴 D. C.의 유력 인사 대니얼 캐럴의 집을 강압적으로 없앤 것이 원인이 되어 워싱턴 대통령은 랑팡을 해고해야만 했다. 그러나 도시건설은 대체로 그의 설계를 따라 이루어졌다. 후에 랑팡은 자신의 일에 대해 9만 5,500달러를 요구했으나 의회는 3,800달러만 지급했다.
노년에 랑팡은 친구들과 메릴랜드에 있는 저택인 '그린힐'에서 살다가 무일푼으로 죽었다. 1909년에 의회는 그의 시신을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장하고 그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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