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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교황(1159~81 재위).
알렉산데르는 개혁 전통에 입각해 교회를 다스렸고, 인노켄티우스 3세 때 절정에 달한 법률가 출신 교황 계열의 태두가 되었다. 당대의 일반적인 추세에 따라 교육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대학교들의 초기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처음에는 교사로서, 후에는 교황으로서 (돈을 받지 말고 자격 있는 후보자들에게 교사 자격을 주라고 명령함으로써) 그 발전에 이바지했다.
보베(1160)와 투르(1163)에서 열린 중요한 교회회의들뿐만 아니라 라테란 공의회(1179)도 주재했다.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발생한 이단설인 카타르파 또는 알비파의 확산에 우려를 나타낸 최초의 교황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181년 그가 죽었을 때 교회는 그가 즉위했을 때보다 더욱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고 그의 정책들은 후임자들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또한 그는 험난했던 재위기간 동안 온건한 모습을 잃지 않았으며, 심지어 정적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 그는 유능한 중세 교황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처신으로 큰 명성을 얻은 인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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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알렉산데르 3세에 대한 평가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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