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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골포해전

다른 표기 언어 安骨浦海戰

요약 임진왜란 때 안골포(경남 진해시 웅동면)에서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을 물리친 해전.

1592년(선조 25) 7월 8일에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과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등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와기자카[脇坂安治]가 이끄는 일본군을 격멸한 후, 가덕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서 와기자카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일본 함선이 안골포로 왔다는 정보를 들었다.

이순신

이순신 장군의 동상

ⓒ Brücke-Osteuropa / wikipedia | Public Domain

원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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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함대는 이억기가 포구 바깥 바다인 가덕도 주변에 진을 치고 있다가 복병을 배치해놓고, 본대의 해전지로 와서 전투할 작전계획을 세워 10월 새벽에 출항했다. 이순신의 함대는 먼저 학익진 진형으로 진격하고, 원균의 함대도 그뒤를 따라 안골포를 향해 출발했다. 안골포의 포구에는 일본 함선 42척이 있었는데, 대선 3척만이 포구에서 밖을 향하여 떠 있고 나머지 함선들은 정박하고 있었다.

포구의 지세는 배가 출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았으므로 일본군을 유인하여 포구 밖으로 꾀어내려 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한산도에서 유인작전에 당했던 생각을 하고, 이번에는 좀처럼 유인작전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러자 조선군은 번갈아 포구에 출입하면서 여러 총포를 쏘고 장편전 등으로 일본함선을 불태우려 했다. 이때 이억기도 복병선을 배치해놓고 공격에 합세했다. 이 전투를 통해 일본함선을 거의 격파했고 일본군 250여 명을 사살했다. 그리하여 살아 남은 일본군은 육지로 도망갔다.

이 해전은 이틀 전에 있었던 한산도 해전에 이어서 거둔 대승리였다.→ 한산도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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