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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마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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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페루와 볼리비아에 속한 안데스 산맥 중부, 바람이 거세고 광대한 티티카카 고원에 사는 남아메리카 인디언.

아이마라족(Aymara)

ⓒ AGN Argentina/wikipedia | Public Domain

식민지 시기에는 칸치족·코야족·루파카족·코야라과족·우비나족·파카사족·카랑가족·차르카족·키야카족·오마수요족·코야우아야족 등으로 이루어졌다. 고대부터 볼리비아 남부, 칠레 북부, 페루 남부지역 일부에서 사용되던 아이마라어를 쓰고 있다. 인구는 1970년대에 페루·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인접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합해 약 150만~200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아이마라족은 토양이 거칠고 기후가 험한 지역에서 주로 농경과 목축을 하면서 살고 있으며, 거친 초지에서 라마와 알파카 목축을 한다. 주요경작물로 감자·오카·울루쿠·키노아·옥수수·콩·보리·밀 등을 재배한다. 티티카카 왕골로 만든 뗏목을 이용한 어로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잉카족에게 점령되기 전까지는 코야족과 루파카족의 국가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1430년경 잉카의 황제 비라코차 잉카가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의 남쪽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마라족 영토는 결국 잉카 제국에 정복되었으나, 이에 대해 아이마라족은 지속적인 항쟁을 전개했다.

1535년의 스페인 정복 이후 금과 인디언 노동력을 손에 넣으려는 세력들이 몰려들었으며, 도미니쿠스회와 예수회의 선교사업도 뒤이어 시작되었다. 식민지의 농업경제는 아이마라족을 농장과 광산의 일꾼만이 아니라 하인이나 밀림의 코카 대농장 노동자로 부림으로써 유지되었다. 1780년부터 저항이 시작되어 스페인 사람들 상당수를 살상시킨 이 항쟁은 1821년 페루가 스페인 왕정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이마라족은 잉카 및 스페인의 지배시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몇 차례 문화적 변화를 경험했다. 잉카는 제국의 일부로서 아이마라 왕조를 강화했으며, 새로운 종교의식과 신화, 다양한 음식물, 새로운 예술양식 등을 아이마라족에 소개했다. 스페인인은 새로운 가축·식물·쟁기경작·철기도구 등을 들여왔으며, 토착 종교를 억압했으나 실제로는 원주민을 피상적으로만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을 뿐이다. 아이마라족의 종교는 여전히 다신교적이며, 수많은 마술사·점쟁이·마녀 등이 아직도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사후세계에 관한 믿음에서만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나타난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과 경제발전은 사회조직에 변화를 초래했고, 전통적인 예술과 기술의 쇠퇴를 가져왔다.

아이마라족은 집에서 짠 스페인 식민지 초기 형태의 의복을 입는다. 남자들은 귀싸개가 달린 원추형의 모직 모자인 '고로스'를 쓰고, 여자들은 토산의 모직물로 만든 둥근 모자를 쓰며 추운 날씨에는 모직 두건을 착용하기도 한다. 가옥은 박공형 지붕에 대략 가로 2.5m, 세로 3m의 직4각형 몸체를 갖춘 형태이며, 서까래 기둥 위에 야생 풀로 엮은 지붕이 덮여 있으며 뗏장이 입혀져 있다. 1개뿐인 방 한쪽 구석에는 진흙으로 만든 가족공용침상이 있고, 문 옆에도 역시 진흙으로 만든 난로가 있다. 남자 형제들과 이들의 아내, 아들, 미혼인 딸로 구성되는 확대가족이 한 구역에 모여 살면서 기본적인 사회단위를 이룬다. 정치단위는 '아이유'(Ayllu)로서 몇 개의 확대가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고유의 아이유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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