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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310경, 갈리아 부르디갈라(지금의 프랑스 보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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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395경, 부르디갈라 |
국적 | 로마 |
요약 고대 로마의 시인·웅변가.
주로 고향 갈리아의 시골풍경에 심취한 작품을 썼다. 부르디갈라에 있는 여러 유명한 학교에서 처음에는 문법을, 뒤에는 웅변을 가르쳤다. 이 일이 호평을 받자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는 그를 트리르로 불러 황제 계승자인 그라티아누스의 가정교사로 삼았다.
그라티아누스는 즉위하자마자 아우소니우스에게 아프리카·이탈리아·갈리아를 관장하는 장관직을 수여하고 이어 379년에는 집정관으로 임명했다. 383년 그라티아누스가 살해된 후 아우소니우스는 가론 강가에 있는 영지로 돌아와 문학에 몰두한 채 수많은 저명 인사들과 시적인 편지들을 활발하게 교환하며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스도교도였지만 주로 이교도적 전통 속에서 작품을 썼는데, 현재 남아 있는 작품들로 보아 그는 그리스도교 라틴 문학의 선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또한 자기 고장을 소재로 작품을 쓴 최초의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우소니우스는 자전적인 작품으로 유용한 가치가 있는 〈서문 Praefatiunculae〉과, 천문학과 점성술에 대한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운문작품인 〈목가 Eclogae〉·〈고귀한 도시의 질서 Ordo nobilium urbium〉, 도덕극의 효시가 된 〈7현인들의 연극 Ludus septem sapientum〉등의 작품을 썼으며, 그외에도 〈그리스 사화집〉에서 번안한 풍자시들도 많이 남겼다. 예전의 유대관계에 대한 그의 감정적인 애착은 죽은 친척들에 대한 여러 편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 〈추모제 Parentalia〉에서 엿볼 수 있으며, 〈부르디갈라의 교수들 Professores Burdigalenses〉은 부르디갈라에 있었던 여러 교수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들 작품들은 유쾌한 인물묘사를 통해 갈리아 지방의 시골생활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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