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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789~96년의 프랑스 혁명중에 발행된 지폐.
혁명 정부의 재정조달수단으로 발행된 아시냐의 급격한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1789년 12월 국민의회는 다급한 채무의 결제를 위해 최근 혁명으로 국유화된 교회 토지를 담보로 해서 이율 5%의 공채로 아시냐를 발행했다.
1790년 9월부터는 국민의회에서 아시냐를 공채가 아닌 불환지폐로 전환하게 됨에 따라, 그 유통량이 4억~12억 리브르로 증가했다. 아시냐가 화폐로 유통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화폐기근이 사라지고 경제성장이 촉진되는 등 경제에 활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폐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과 더불어, 불확실한 혁명 정부가 무너질 경우 아시냐는 아무 가치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 가치는 곧 떨어지고 말았다.
1792년 다른 유럽 열강들과의 전쟁 발발로 아시냐의 가치는 더욱 떨어졌다. 1796년에는 아시냐를 대신해 토지증권 망다테리토로(mandats territoraux)가 발행되어 1매당 30아시냐의 비율로 교환되었다. 그러나 망다가 공신력을 얻는 데 실패함으로써 결국 프랑스 집정부는 1797년 2월 4일 다시 경화 체제로 복귀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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