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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가루

다른 표기 언어 Ashigaru , 足輕

요약 일본 무가시대(武家時代)의 보병·잡병.

'가볍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의 군담소설(군키모노가타리[軍記物語])에 이미 이 명칭이 보인다. 당시의 전쟁은 기마병에 의한 개인적 전투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아시가루는 주력군이 아니라 후방 교란, 방화 등에 동원되었고, 그 성원은 장원에서 징발된 일반 농민이었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남북조 동란을 거치면서 전투형태가 차츰 개인적 전투에서 보병에 의한 집단적 전투로 변화되어감에 따라 아시가루의 역할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에는 평상시에 농경에 종사하는 농민을 전시에 아시가루로 징발하는 체제가 성립·일반화되었다. 특히 교토[京都] 남부의 야마시로[山城]와 오늘날의 나라 현[奈良縣]에 해당되는 야마토[大和] 지역 등은 장원제 붕괴와 농민층의 분해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체제의 성립도 빨랐다. 오닌[應仁]의 난(1467) 때에는 기나이[畿內]에 야마시로아시가루슈[山城足輕衆]나 고오리야마아시가루슈[郡山足輕衆] 등으로 불리는 아시가루 조직이 있어, 모두 동서 양 군대 중 한쪽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주로 경제적 목적으로 동분서주하여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다. 이치조 가네라[一條兼良]가 〈초담치요 樵談治要〉에서 이것을 시국의 폐단으로 지적한 것은 이때문이었다. 센고쿠 시대[戰國時代]에는 센고쿠다이묘[戰國大名]의 통제하에 병농분리가 추진되고 전쟁에도 총과 화약 등이 사용되면서 그 중요성이 한층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아시가루를 대장의 지휘하에 소총 아시가루, 궁시 아시가루로 양분, 훈련시켜 상비군에 편입시켰다. 에도 시대[江戶時代]에는 이것이 제도화되어 도시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아시가루마치[足經町]라는 구획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평상시에는 잡역을 담당하고 전시에는 아시가루조(組)에 속하여 보병이 되는 최하층 무사단을 형성했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후에는 한때 '소쓰'[卒]라 불리기도 했고 폐번치현(廢藩置縣) 후에는 그 일부가 사족(士族)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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