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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드 말리크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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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다마스쿠스에 수도를 둔 우마이야 왕조의 제5대 칼리프(685~705 재위).

우마이야조의 통치는 아브드 알 말리크에 의해 전반적으로 크게 강화되었다.

그는 이슬람 세계에서 상당한 도덕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메디나의 종교 계층들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다. 아브드 알 말리크는 우마이야조의 어떤 전임 칼리프보다도 신앙심이 깊었다. 오랜 메디나 체류 덕분에 그는 메디나 신학자들의 정서를 잘 알고 있었다. 칼리프로서 그는 그들을 정중하게 대했고 그의 사생활은 그들의 이상에 근접했다. 그 결과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전처럼 우마이야조에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

아브드 알 말리크는 행정언어로 지방언어 대신 아랍어를 채택했다. 정부관리는 대부분 비(非)이슬람교도였지만 아브드 알 말리크의 조치들로 아랍 이슬람교도들은 보다 쉽게 행정을 다룰 수 있었다. 새로운 이슬람 통화도 주조했다.

이것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동전을 본떴지만 이슬람의 각명(刻銘)을 한 것이었다. 이슬람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랍인의 특권적 지위는 유지되었다. 사실상 비아랍 이슬람교도의 문제는 날로 심각해졌고 나중에는 우마이야조의 주요 위협요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마이야 가문은 다마스쿠스에 살면서 칼리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총독으로 임명되었지만 또한 많은 이들이 무능하다 하여 소환당했다. 아브드 알 말리크는 씨족의 지지를 받았으며 곧잘 비교되곤 하는 우마이야조의 제1대 칼리프 무와위야보다 더 전제적이었다. 그는 자문위원회와 상의하는 정책을 버리고 모든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결정했다. 종교적 관심과 이상은 매우 높았지만(예를 들면 그는 예루살렘에 반석 위의 돔을 세웠음) 그는 노련한 정치가였다. 시리아에서 그는 북부 아랍 부족을 회유할 수 있었고 이것에 대해 남부 아랍 부족이 분개했다.

아브드 알 말리크는 탁월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동부의 부왕으로 알 하자즈를 선택했으며 끝까지 그를 지지했다. 그는 검은 피부와 땅딸막한 체구에 수염을 길게 길렀다.

지독하게 인색하여 별명이 '돌 이슬'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화술이 뛰어났으며 시를 좋아했다. 위기의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자신의 주장에 단호했으며 필요하다면 엄청나게 잔인할 수도 있었다. 적을 추적하는 데는 사정을 두지 않았고 모든 나라일을 세밀하게 감독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승계문제가 첨예화되었는데 아버지는 생전에 동생인 이집트 총독 아브드 알 아지즈가 아브드 알 말리크의 뒤을 잇도록 지명한 바 있었다. 조정 신하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아브드 알 말리크는 자식들을 총애하여 동생을 후계문제에서 배제하는 조치에 착수했다. 아브드 알 아지즈에게 후계권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705년 5월 아브드 알 아지즈가 먼저 죽었다. 아브드 알 말리크는 마음 편히 아들들인 알 왈리드, 술레이만, 야지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얼마 뒤에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죽자 맏아들인 알 왈리드가 별 문제 없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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