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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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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899. 12. 8 |
국적 | 독일 |
요약
케른텐의 공작.
Arnulf von Krnten이라고도 함.
삼촌인 신성 로마 황제 비만왕 카를을 폐위시키고 독일 왕이 되었다. 나중에 잠시 황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비만왕 카를의 큰형인 카를로만의 서자이며 샤를마뉴의 현손(玄孫)으로, 카를이 바이킹의 침략에 맞서 적극적인 대항책을 취하지 못하자 제후들의 지지를 받아 887년 왕이 되었다.
권력에 대한 야심으로 가득 차 있던 그는 프랑스의 새 국왕이 된 파리 백작 오도, 이탈리아 왕으로 선출된 프리울리 후작 베렝가리오, 부르고뉴의 라울 등을 봉신으로 삼았다. 889년 베렝가리오가 스폴레토의 구이도에게 이탈리아 왕위를 빼앗기자 교황 스테파누스 5세는 아르눌프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모라비아에서 슬라브족과 싸우느라 바빴던 그는 그 요청에 응할 수 없었고 891년 2월 구이도가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4개월 후 아르눌프는 북쪽으로 진군해 브뤼셀 북쪽의 딜라 강에서 바이킹을 격파했다.
893년 구이도의 아들 람베르토를 마지못해 공동 황제로 즉위시킨 새 교황 포르모수스는 람베르토에 맞서 아르눌프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894년 1월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베르가모를 점령하고 재빨리 밀라노와 파비아를 정복했다. 그후 남쪽으로 진군해 구이도를 공격했으나 그의 부대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원정을 포기하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퇴각해야 했다.
그는 후퇴하는 길에 봉신인 부르고뉴의 라울에게 공격을 받았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르눌프는 자신의 서자 츠벤티볼트를 보내 부르고뉴를 약탈하게 했다. 오도가 폐위되고 단순왕 샤를이 893년에 13세의 나이로 프랑스 왕에 즉위하자 아르눌프는 내전을 끝내기 위해 오도와 샤를을 보름스로 소환했다. 그러나 샤를은 보름스로 오지 않았다. 아르눌프는 오도를 지지하는 한편 츠벤티볼트를 로트링겐(지금의 로렌) 왕위에 앉혔다.
894년 스폴레토의 구이도가 죽은 뒤 교황 포르모수스는 아르눌프에게 다시 한번 이탈리아를 침략해 줄 것을 촉구했다. 895년 10월 알프스 산맥을 넘은 아르눌프는 악천후와 질병에 시달린데다 프리울리 후작 베렝가리오의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로마에 입성하게 되었다. 896년 2월 22일 교황 포르모수스는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아르눌프를 황제로 즉위시키고 람베르토의 폐위를 선언했다.
2주 동안 로마에 머문 뒤 아르눌프는 람베르토와 결말을 짓기 위해 남쪽으로 진군했으나 도중에 갑자기 병에 걸려 독일로 돌아가야 했다. 교황이 폐위를 선언했는데도 람베르토는 계속 황제 자리를 지켰다. 계속해서 병고에 시달리던 아르눌프의 생애 말년 3년 동안 모라비아인들과 헝가리인들이 독일에 침입했고, 로트링겐에서는 츠벤티볼트에 대항한 반란이 일어났으며, 이탈리아를 잃었고, 프랑스는 그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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