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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94. 3. 24, 작센 클라우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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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55. 11. 21, 켐니츠 |
국적 | 독일 |
요약
그와 같은 시대 및 후기의 학자들에게는 학식이 높은 고전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로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대 권위자들의 이론과는 독립된 독자적인 의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사색)에 반대하고 관찰에 근거한 자연과학의 기초를 세운 최초의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저서 〈광물에 관하여〉는 채광과 제련 기술에 관한 것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화석의 성질에 관하여 〉는 물리적 성질에 기초한 광물의 과학적인 분류를 최초로 제시하고 많은 새로운 광물과 이들의 산출상태 및 상호관계에 대해 기재하여, 최초의 광물학 교과서로 간주되고 있다.
아그리콜라의 혈통은 불분명하다. 그는 1514~18년 이제 막 인문주의자들의 부흥기를 맞고 있던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고전·철학 및 문헌학을 공부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영향을 받았고, 에라스무스와 친교를 맺기도 했다. 에라스무스는 아그리콜라의 최초의 광물학 저서인 〈베르마누스〉의 서문을 썼다. 아그리콜라는 1526년 작센으로 돌아왔으며, 1527~33년 유럽의 가장 부유한 금속광산지역으로 성장하는 광업도시 요아힘스탈에서 시의로 일했다. 그는 여가시간 모두를 광산과 제련공장을 방문해 학식있는 광부와 이야기하고 채광에 관한 고전을 읽으며 보냈는데, 그가 택한 지역의 광석과 광물로부터 새로운 약을 찾으려는 희망도 갖고 있었다. 이 기간은 그의 일생을 결정지은 시기가 되었으며, 에르츠거비르거 광산지역에 관한 보고서 〈베르마누스 혹은 광물에 관하여〉(1530)로 시작하는 그의 대부분의 저서에 대한 연구 주제가 정해진 시기였다.
그와 같은 시대 및 후기의 학자들에게는 학식이 높은 고전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로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대(古代) 권위자들의 이론과는 독립된 독자적인 의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사색(思索)에 반대하고 관찰에 근거한 자연과학의 기초를 세운 최초의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저서 〈광물에 관하여 De re metallica〉는 채광과 제련 기술에 관한 것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화석의 성질에 관하여 De natura fossilium〉는 물리적 성질에 기초한 광물의 과학적인 분류를 최초로 제시하고 많은 새로운 광물과 이들의 산출상태 및 상호관계에 대해 기재하여, 최초의 광물학 교과서로 간주되고 있다.
아그리콜라의 혈통은 불분명하다.
그는 1514~18년 이제 막 인문주의자들의 부흥기를 맞고 있던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고전·철학 및 문헌학을 공부했다. 그는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이름을 라틴식으로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라고 고쳤다. 1518~22년 츠비카우의 어느 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친 후 의학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라이프치히로 돌아왔으나, 대학은 신학(神學) 논쟁으로 혼란스러웠다. 일생 동안 가톨릭교도였던 그는 1523년 좀더 좋은 환경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는 볼로냐와 파두아에서 의학·자연과학·철학을 공부했으며, 마지막으로 베네치아에서 임상(臨床) 연구를 했다.
2년 동안 베네치아에 있는 알디너출판사에서 근무했는데, 의학에 관한 갈레노스의 연구를 발간(1525 출판)하는 작업을 했다.
이 기간중 그는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 Utopia〉를 저술하는 동안 그의 비서를 지냈던 존 클레멘트와 함께 일했는데, 모어의 책은 아그리콜라가 후에 색슨 광산지역의 법률과 사회관습에 관해 관심을 갖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후에 여러 종류의 저서를 저술하고 발간하도록 용기를 주었던 대학자(大學者) 에라스무스와 만나 친교를 맺었다.
에라스무스는 아그리콜라의 최초의 광물학 저서인 〈베르마누스 Bermannus〉의 서문을 썼는데, 아그리콜라·모어 및 다른 세 학자만이 그러한 명예를 누렸다.
아그리콜라는 1526년 작센으로 돌아왔으며, 1527~33년 유럽의 가장 부유한 금속광산지역으로 성장하는 광업도시 요아힘스탈에서 시의(市醫)로 일했다. 그는 여가시간 모두를 광산과 제련공장을 방문해 학식있는 광부와 이야기하고 채광에 관한 고전을 읽으며 보냈는데, 그가 택한 지역의 광석(鑛石)과 광물로부터 새로운 약을 찾으려는 희망(이런 희망은 결국 좌절됨)도 갖고 있었다.
이 기간은 그의 일생을 결정지은 시기가 되었으며, 에르츠거비르거 광산지역에 관한 보고서 〈베르마누스 혹은 광물에 관하여 Bermannus:sive, de re metallica〉(1530)로 시작하는 그의 대부분의 저서에 대한 연구 주제가 정해진 시기였다. 의료활동에서 그는 관습적인 치료보다 직접 관찰하는 방법을 이용했지만 특별히 의사로서 탁월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독일에 격리요법을 도입했으며, 그의 책은 광부의 직업병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1553년 켐니츠의 시의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1546년 작센의 선제후 모리츠 공작은 아그리콜라를 켐니츠의 시장으로 임명했다. 또한 그는 신교도 통치자인 모리스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 사이의 미묘한 협상에서 밀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 시기의 종교전쟁은 그때까지 신교도 게르만 국가들에 퍼져 있었으며 아그리콜라가 혜택을 본 관용적인 분위기를 사라지게 했다.
그의 외교적인 역할과는 달리, 그는 정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에게 터키에 대해 전쟁을 수행하라는 강력한 호소로 행해졌던 그의 혈기 넘치는 '터키 연설'은 독일인에게는 애국적인 찬가였으며, 종교적·정치적인 단합에 대한 호소였다. 그 연설은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으며, 자주 재출판되었다.
업적
아그리콜라의 대표작은 논문 〈베르마누스〉에 이어 쓴 〈광물에 관하여〉로 그가 죽은 뒤인 1556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아그리콜라는 금속에 관한 역사적이고 고전적인 기록들을 조사하고, 고대 금속광산의 분포와 크기를 평가하고 있으며, 색슨 광산지역의 소유권 형태와 법률체계 및 매일매일의 노동관리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그는 채광과 야금(冶金)에 주로 관심을 가졌으며, 또한 광체의 지질·탐사·채굴·배수와 환기(換氣)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여기에는 수력(水力)을 응용한 것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광석의 분석시험과 제련 전 광석의 부화(富化)처리법 및 많은 금속의 제련과 정련 과정을 기술했으며, 유리 및 제련 공정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화학약품의 생산에 대한 논의로서 결론을 지었다.
광물학의 아버지로서 인정받을 권한을 부여해준 책인 〈화석의 성질에 관하여〉에서 아그리콜라는 그당시는 '화석'(化石)이라고 불렸던 광물의 구(球)·원추(圓錐)·판상(板狀) 같은 기하학적 형태에 따른 분류를 제시했다. 그는 아마도 '단체'와 '화합물'을 구별한 최초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그리콜라 시대에는 화학적 지식이 거의 없었고 불을 사용해 광석을 분석하는 방법 이외에는 적절한 화학분석법이 없었기 때문에, 광석의 분류도 당연히 조잡한 것이었다.
다른 몇몇 책들 중 특히 〈지하에서 산출된 광석의 성질에 관하여 De natura eorum quae effluunt ex terra〉(1546)·〈지하광석의 생성원인에 관하여 De ortu et causis subterraneorum〉(1546)에서 아그리콜라는 맥 중에 존재하는 광상의 기원에 대한 그의 생각을 기술했으며, 또한 정확하게 이들 광상은 용액으로부터 퇴적되어 생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강의 침식작용과 이것이 산의 형태를 만드는 데 끼치는 영향들을 자세히 기재했다. 기존의 학설들, 심지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리니우스 같은 고전적인 학자들의 학설까지도 쉽게 폐기하는 그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아그리콜라와 학문적으로 같은 시대의 학자들은 그를 높이 평가했다. 1531년 에라스무스는 아그리콜라가 "곧 학문의 정상에 도달한 대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후에 괴테는 그를 프랜시스 베이컨에 비유했다.
멜란히톤은 그를 "표현의 우아함과 전례없는 명료함"으로 칭송했다. 1912년 〈광물에 관하여〉를 영어로 번역한 광산기사 허버트 후버(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됨)는 아그리콜라를 "이전의 비생산적인 사색에 반대하여 연구와 관찰에 근거한 자연과학의 기초를 세운 최초의 학자"로서, 자연과학에 대한 실험적 접근의 창시자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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