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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재미교포 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 19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교민단체인 국민회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초기에는 매주 수요일에 발행되는 주간지였으며, 독립운동과 국권회복에 대한 국내외 기사 및 재외동포 소식 등이 게재되었다. 경영난으로 휴간이 빈번했으나 해방후까지 발간이 지속되었으며, 1974년에는 김운하가 인수하여 월간으로 발간했다.
재미 교포가 발행하는 정기간행물. 1909년 2월 10일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민단체인 대한국민회의 기관지이다. 공립협회의 기관지인 〈공립신보〉와 대동보국회의 기관지인 〈대동공보〉를 통합하고 〈공립신보〉의 지령을 이어서 창간했다.
초대 편집 겸 발행인은 최정익(崔正益)이었고, 그뒤 박용만(朴容萬)·이항우(李恒愚) 등으로 바뀌었다. 전체 4면으로, 1~3면은 순국문판, 4면은 영문판이었다. 매주 수요일에 발행했으며 3·1`운동 때는 격일간으로 발행했다. 창간사에서 "어느 한 단체에 소속된 신문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신문"이라고 하여 민족 전체의 대변지임을 스스로 주장했다. 주로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에 관한 논설과 기사를 실었고, 국내 소식과 미국에 사는 동포들의 소식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1909년 10월 27일 제156호에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사건을 크게 보도했고, 1910년 3월 30일 제178호에는 안중근의 처형을 애도하는 글을 실었다. 국내에도 배포되어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일제에 의해 1909년 3월 26일자 신문을 압수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해까지 무려 54회 발매금지 및 압수를 당했다. 창간 초기부터 책 광고를 많이 했으며, 1915년 3월 11일부터 이대위(李大爲)가 고안한 인터 타입의 식자기로 신문을 제작했다.
재정난으로 자주 휴간하다가, 1922년 대한인국민회가 분리되자 그해 4월 10일부터 8월 10일까지 휴간했다. 해방후에도 발행이 지속되었으며, 1974년 9월부터는 김운하가 인수하여 월간으로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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