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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神道)와 외래 불교의 융합을 가리키는 말.
신도와 불교의 융합은 6세기 중엽 불교가 일본에 유입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두 종교의 융합과정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의 종교생활을 지배한다.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은 흔히 가정에 신도의 가미다나[神棚]와 불교의 부쓰단[佛壇]을 두고 있으며 결혼식은 신도식,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치르곤 한다.
신도와 불교의 공존양식은 나라 시대[奈良時代:710~784]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741년 나라의 도다이 사[東大寺]에 거대한 불상을 조영하기에 앞서 불상 건축계획을 이세 신궁[伊勢神宮]에 모신 신도의 최고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에게 아뢰었다.
또 군신 하치만[八幡]에게도 도움을 구했으며 규슈[九州]에서는 도다이 사를 수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원 내에 우사 하치만 신사[宇佐八幡神社]의 한 분파가 건립되었다. 그 이후로 불교사원 경내에 신사를 건립하거나 신사 근처에 사찰 또는 불탑을 건축하는 관행이 발전했으며 신사에서 불경을 낭송하는 일도 있었다.
또한 신도의 가미[神]는 불교의 부처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794~1185] 초반에는 신도와 불교의 융합 경향을 설명하기 위한 불교이론인 혼지스이자쿠세쓰[本地垂迹說]가 등장했다. 형이상학적인 부처는 본래의 근본실체(혼지)이며 역사 속의 부처는 그 실체의 화신(스이자쿠)이라는 이론이다.
신도와 불교의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부처와 신도의 신은 궁극적으로 통일체이지만 부처는 혼지이며 신도의 신들은 그 화신인 스이자쿠인 것이다. 불교의 여러 종파와 신도의 융합(때로는 중국의 도교도 받아들임)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한때 신사의 신관은 불교 승려들보다 지위가 낮았으며 신도의식에서조차 보조적인 존재로 격하되었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1192~1333]의 정신적 각성기 동안 신도는 불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는데 이세 신도[伊勢神道] 운동은 신도의 신이 부처의 현시가 아니며 오히려 부처와 보살이 신도의 가미의 화신이라고 주장했다.
두 종교는 메이지[明治] 신정부 초기에 취해진 개혁조치에 의해 분리되었다. 신정부는 1868년 신사에 관계하는 불교 승려들에게 신사의 신관이 되든가 환속하라는 칙령(신불분리정책)을 발표했다. 불교 사원에 속한 토지들이 몰수되었으며 황실 내에서의 불교행사가 폐지되었다.
이후 신도는 국가적 종교로 선포되었으며 종교를 초월하는 국가적 숭배의식으로 재해석되었다.→ 국가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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