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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11년 3월 시베리아 치타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단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던 대한인국민회의 시베리아 지방총회이다.
대한인국민회는 중앙총회 밑에 북아메리카·하와이·만주·시베리아 등지에 지방총회를 두었으며, 각 지방총회 관할하에 116개의 지방회를 설립했다. 186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정착하기 시작한 시베리아·연해주 일대는 군대해산 이후 국외 의병의 근거지와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일제의 한국강점을 며칠 앞둔 1910년 8월 23일 유인석(柳麟錫)·이상설(李相卨)·김학만(金學萬) 등이 신한촌(新韓村)에서 한인들을 규합하여 성명회(聲明會)를 조직, 민족의 모든 역량과 수단을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취지의 선언서를 발표하고, 선언서를 일본왕에게 보내어 국제공약의 배신행위를 질책했다.
그러나 일제가 이 일에 대해 러시아 당국에 강력히 항의하자, 러시아 당국은 이상설·이범윤 등 성명회와 13도 군부의 간부 20여 명을 체포·투옥하는 한편, 러시아에서 한국 동포의 정치활동을 엄금했다. 이에 성명회는 9월 11일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노령의 한국 동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미주의 대한인국민회에서 파견된 정재관(鄭在寬) 등과 시베리아 국민회를 만들었다. 간부진은 회장에 박집초(朴什初), 부회장에 태용서, 서기에 탁공규, 극동전권위원에 이강(李剛) 등이었다.
시베리아 국민회는 미국에 있는 대한인국민회 본부와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교육보급, 실업의 발달,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이 일대를 독립운동근거지로 삼으려 했으며, 이강의 주간으로 〈대한교보 大韓敎報〉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또한 치타를 중심으로 하여 우수리 강에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기까지 한인교포들이 살고 있는 모든 지방회를 조직하고, 강연회 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양하거나 한인교포들의 생활향상과 자치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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