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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대인 학살 범죄 연구가.
1908년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동쪽 변방이던 부크자크스에서 유복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아버지를 여의고,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양부 밑에서 자랐다. 1932년 프라하기술대학에서 건축공학학위를 받은 후 우크라이나의 르비우에 정착해 건축업에 종사하였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치스 독일의 유대인 사냥에 잡혀 3년간 몇몇 강제수용소를 거쳐 오스트리아의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종전을 맞았다. 전쟁 기간 중 89명이나 되는 일가친척을 모두 잃었으나 다행히 아내는 폴란드인으로 신분을 속이고 살아남아 만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다 이듬해인 1946년 30여 명의 다른 집단수용소 생존자들과 함께 유대인학살 책임자 K.A.아이히만의 출생지로 당시 아이히만 형제가 살던 오스트리아의 린츠에 '유대역사기록센터'(Jewish Historical Documentation Center)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나치스 범죄 고발에 나섰다.
1960년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숨어 있던 아이히만을 찾아내, 이스라엘 비밀경찰과 협력하여 체포한 후 이스라엘로 연행해 단죄하게 하였다. 1961년 유대역사기록센터를 빈으로 옮겼으며, 1963년 10월에는 2년여의 조사 끝에 당시 빈 경찰관으로 재직하던 칼 요제프 실버바우어를 체포하는 데 공을 세웠다. 칼 요제프 실버바우어는 1944년 독일 나치 친위대 하사관으로서, 네덜란드에 숨어 있던 안네 프랑크 일가를 체포한 중심 인물이다. 종전 후 한때 안네라는 소녀가 실제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일었는데, 비젠탈이 실버바우어를 붙잡아 이 의문을 불식시켰다.
이후로도 그는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로부터 자금을 원조받아 평생사업으로 유대인 학살 관계자를 고발하여 1,100여 명이 넘는 나치 범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오랑예 훈장,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공화국 훈장, 미국 의회로부터 인도주의적인 업적을 기리는 황금 메달,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예루살렘 메달을 수여 받았으며, 미국과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등에서 16개에 달하는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그의 이름을 기려 설립된 시몬 비젠탈 센터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자료와 기억들을 보존하고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지사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1995년 오스트리아 빈은 그를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주요 저서로 〈우리 가운데 있는 살인자들 The Murderers Among Us〉, 〈복수가 아니라 정의다 Justice, Not Vengeance〉, 〈희망의 돛 Sails of Hope〉, 〈매일을 기억하며 Every Day Remembrance Day〉, 〈해바라기〉 등이 있다. 또한 평생을 나치 전범 추적에 바친 그의 모습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The Boys from Brazil〉과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오데사 파일 The Odessa File〉을 비롯해 여러 권의 소설 및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2007년에는 미국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을 잊은 적이 없어요 I Have Never Forgotten You〉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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