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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다른 표기 언어 pilgrimage , 巡禮

요약 그리스도교에서 성인의 성소나 거룩한 장소를 찾아가는 일.

초자연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서, 감사를 표하거나, 고행을 하기 위해서, 헌신을 위해서 등의 여러 가지 동기를 가지고 순례한다. 기록에 따르면 일찍이 2세기부터 예루살렘 순례가 있었다고 한다.

1940년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벌인 발굴 작업으로 2세기에 제작된 사도 베드로의 기념비와 신앙 행위를 보여주는 2,3세기의 수많은 비명(내용이 많이 지워져 있었음)이 발견되었다. 354년에 제작된 로마 교회의 전례력은 해마다 신자들이 찾는 29개 성인들의 성소를 열거한다. 스페인의 수녀 에게리아가 남긴 순례기(400경)는 팔레스타인 성지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동업조합과 숙박업 제도가 있었음을 입증한다. 영국의 교회사가 비드(735 죽음)는 5~8세기에 여러 성인의 묘지에서 이루어진 순례를 열거했다.

중세에는 사제에게 축복을 받고서 순례를 시작했다. 누구든지 순례자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독특한 복장을 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방문한 성소의 상징물을 모자에 달기도 했다. 여행 도중에는 특별히 순례자들을 위해 지은 숙소를 찾았다. 중세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주요순례지들은 팔레스타인 및 소아시아지역, 스페인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로마 등이었다.

각 지역에 명성을 얻은 순례지들도 매우 많았는데, 이탈리아의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1226 죽음)의 무덤, 프랑스의 투르에 있는 성 마르티노(397 죽음)의 무덤, 독일의 풀다에 있는 성 보니파시오(754 죽음)의 무덤, 영국의 캔터베리에 있는 토머스 베케트(1170 죽음)의 무덤, 아일랜드의 타운패트릭에 있는 성 파트리치오의 무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성직자들이 모두 순례를 전적으로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무절제한 행위들을 경고하고 순례 관습 자체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했고, 몇몇 사람들은 일부 성해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로마 가톨릭 순례자들은 오늘날에도 중세기의 순례 중심지들을 많이 찾고 있으며, 좀더 최근에 생긴 성소들도 꾸준히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인도 고아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52 죽음)의 성소, 토리노 성의(1578)가 보관되어 있는 이탈리아의 토리노 성소, 캐나다에 있는 생안느드보프레(1658)의 성소, 프랑스의 아르스에 있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1859 죽음)의 성소, 리지외에 있는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1897 죽음)의 성소 등이며, 성모 성지로는 멕시코의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1531), 프랑스의 라 살레트(1846)와 루르드(1858), 포르투갈의 파티마(1917) 등이다.

동방정교회 신자들은 대개 거룩한 사람들(startsy)에게 영적·현실적인 도움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수도원들을 대상으로 순례를 한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은 1530년에 작성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문서는 순례 행위를 '유치하고 무익한 일'로 묘사했다. 오늘날 개신교도들도 비텐베르크에 있는 마르틴 루터의 무덤이나 링컨셔 엡워스에 있는 웨슬리 기념관을 찾기는 하지만, 그것을 그리스도교인의 의무나 영적인 유익을 얻기 위한 신앙 행위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러한 장소를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성소로 여기지도 않는다.

순례(pilgrimage)

이슬람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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