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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영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거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볼 때 고대 신라에서는 무사들이 수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열전 장보고조에 "정년(鄭年)이 수영에도 능하여 해중(海中) 50리를 헤엄쳤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1898년 5월 14일에 발표된 무관학교 칙령 제11·17조에 수영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1898년 이전부터 수영이 행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8년 8월 2일에는 당시 조선체육회와 동아일보사가 공동주최로 원산의 송도원에서 제1회 강습회를 열었다. 경영이 처음 열린 것은 1929년 9월 1일에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수영대회이며, 1958년 5월 24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렸던 제3회 도쿄 아시아 경기대회에 국제대회로는 처음 출전했다. 1946년 3월에 동호인들이 조선수영경기연맹을 결성했으며 1948년에 대한수상경기연맹, 1966년에 대한수영경기연맹으로 개칭했다. 그후 1966년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 1967년에 도쿄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에 참가했다.
1970년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다이빙 종목의 송재웅과 경영의 조오련이 400m와 1,5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대회, 1973년 베오그라드 세계수영선수권대회, 1974년에는 제7회 테헤란 아시아 경기대회와 아시아 에이지 그룹 수영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1976년에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 1977년에는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했으나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홍콩 국제수영대회에서는 종합 1위를 차지했다. 1980년에는 제1회 아시아 초청수영선수권대회(인도)와 주니어 올림픽 대회(도쿄) 등에 출전했고, 특히 도쿄 대회에서 최윤정과 이시은이 1위를 차지했으며, 조오련은 대한해협을 횡단하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1982년 제9회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최윤희가 여자 배영 100m 종목에서 1분 06초 39, 200m 종목에서 2분 21초 96, 개인 혼영 200m 종목에서 2분 24초 32로 각각 금메달을 획득하여 3관왕이 되면서 한국 수영사상 가장 좋은 성과를 이루었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최윤희가 뉴델리 대회에 이어 2연패에 도전했으나 배영 100m와 200m에서만 금메달을 획득하여 2관왕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는 일본·중국의 강력한 상대들을 눌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1989년 빈 국제수영대회에서는 김수진이 접영 2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0년에는 제11회 베이징 아시아 경기대회 배영 200m 종목에서 지상준이 금메달을 획득했고, 1994년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배영 200m 종목과 자유형 400m 종목에서 지상준과 방승훈이 각각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8년 제13회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조희연이 접영 200m 종목에서, 2002년 제14회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김민석이 자유형 5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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