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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30. 10. 14, 헤이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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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14. 6. 8, 하노버 헤렌하우젠 |
국적 | 하노버 |
요약
하노버 선제후 부인, 영국 왕위계승자.
(독). Sophie von der Pfalz. (영). Sophia of the Palatinate.
그녀의 아들이 영국 왕 조지 1세가 되었다.
소피아는 라인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와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 사이의 12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1649년 이후 하이델베르크에서 팔츠 선제후로 복위된 남동생 카를 루트비히와 함께 살았으며, 1658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결혼했다. 남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1692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하노버) 선제후가 되었으나 1698년에 죽었다. 전부터 그녀는 영국왕위계승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1689년 영국하원은 권리장전을 검토하면서 그녀의 왕위계승을 거부했다. 그러나 1700년, 영국의 사정이 좀더 심각해지자 이 문제는 다시 거론되었다. 당시 병으로 시달리던 윌리엄 3세에게는 후사가 없었으며 앤 공주의 유일한 아들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도 얼마 전에 죽었으므로, 그녀는 프로테스탄트로서 영국왕위서열에 가장 우선해 있었다. 1701년의 왕위계승법은 윌리엄과 앤에게 후사가 없을 경우 영국왕위를 "가장 훌륭한 소피아 공주, 하노버 공작의 미망인이자 선제후 부인"과 "그녀의 직계상속인이며 프로테스탄트인 사람"에게 계승하도록 규정했다. 소피아의 아들인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는 영국 문제에 조금이라도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었으며, 앤 여왕도 자신의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왈가왈부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소피아는 앤 여왕 치세 동안 영국의 형편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앤 여왕이 분노에 찬 서한을 소피아에게 보낸 것이 소피아의 죽음을 재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피아가 죽고 2개월이 채 못 되어 앤 여왕이 죽자 소피아의 아들 게오르크 루트비히는 영국 왕 조지 1세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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