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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봉헌 축일

다른 표기 언어 Feast of the Presentation of the Lord , 主-奉獻祝日

요약 5세기 중엽 동방교회에 촛불을 켜고 축제를 거행하는 관습이 생겼는데 이로부터 주님 봉헌 축일이라 부른다. 과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축일을 성모 마리아의 청정식으로 이해했으나 지금은 주의 봉헌을 기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성공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성전 봉헌절로, 그리스 교회에서는 예수가 시므온과 성전에서 만난 것과 관련하여 히파판테(만남절)라고 부른다. 4세기 후반 순례자 에테리아가 예수공현 축일 후 40일째인 2월 14일 주님 봉헌 축일 축제에 참가하고 〈에테리아 순례기〉에 기록한 것이 첫 기록이다. 542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주님 봉헌 축일을 크리스마스로부터 40일째 날인 2월 2일로 지정했고 다. 서방교회는 교황 세르기우스 1세(687~701 재위)가 로마에서 이 축일을 제정했다.

과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축일을 성모 마리아의 청정식을 기념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지금은 주의 봉헌을 기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성공회에서는 주님 봉헌 축일을 그리스도의 성전 봉헌절로 부른다. 그리스 교회에서는 예수가 나이 많은 시므온과 성전에서 만난 것과 관련하여 이 날을 히파판테(Hypapante:만남절)라고 부른다.

이 축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예루살렘에서 나온 것으로, 4세기 후반 서방의 순례자 에테리아가 예수공현 축일(당시는 그리스도의 생일로 축하되었음) 후 40일째인 2월 14일 이 축제에 참가하여 〈에테리아 순례기 Peregrinatio Etheriae〉에 이에 관해 기록한 것이다.

주님 봉헌 축일은 곧 다른 동방 도시에도 전해졌고, 542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이 축제일을 2월 2일(크리스마스로부터 40일째 되는 날)로 옮긴다는 칙령을 공포했다. 5세기 중엽에는 촛불을 켜고 축제를 거행하는 관습이 도입되었는데, 주님 봉헌 축일이라는 명칭은 이러한 관습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서방교회에서는 교황 세르기우스 1세(687~701 재위)가 로마에서 이 축일을 제정했다. 동방교회에서 이 축일이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축일인 반면, 서방교회에서는 1969년 교회력 개혁 때까지 성모 마리아의 축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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