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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의 서양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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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도 여전히 궁정이나 귀족의 후원자들의 입김이 예술가의 명성을 좌지우지했지만 아카데미가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살롱전은 그 공적인 성격으로 인해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살롱 전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은 대개 그리스·로마 신화나 역사에서 주제를 따온 누드 상으로서 서술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들은 주제를 당대의 사건이나 문학작품에서 따온 것들이 많았다.

아카데미는 교육과정에서 영웅적 성격의 절제된 신고전주의를 가르쳤으나 반대로 전람회를 위해서 새로운 것, 감정적인 것, 선풍적인 것에 관심을 모았다. 전시할 때는 석고모형 작품을 전시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자의 요구대로 대리석이나 청동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고 수집가들 집의 정원이나 멋있는 응접실에 놓여지기도 했다.

파리에서는 작품을 작게 축소시키는 기계가 개발되고 경비도 절감시키는 기술이 고안되어 실내장식용 조각이 범람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의 개발은 조각의 질뿐만 아니라 건축·가구·금속세공품 장식의 질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19세기에 가장 저조했던 분야는 교회나 공공건물의 대형부조 같은 기념조각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개인의 자주성에 치중하는 당시의 낭만적인 분위기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장이나 공공장소에 세워지는 초상조각은 공공조각이면서도 이당시에 많이 세워졌다. 왕족 이외의 인물을 기념하는 이런 종류의 초상조각이 세워진 것은 고대 이래 처음으로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리버풀과 버밍엄에 세워진 넬슨 제독의 상이 그것이다.

19세기말에는 박애주의자, 기업가, 이름없는 장군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초상조각이 제작 되었다.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공공조각으로는 카를로 마로체티의 〈엠마누엘레 필리베르트 공작〉(1833, 토리노), 크리스티안 다니엘 라우흐의 〈프리드리히 대왕〉(1836~51, 베를린)과 프랑스의 잔 다르크상 몇 점이 있다.

이것들은 마테오 알론소가 제작하여 1902년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의 국경에 세워진 거대한 〈안데스 산맥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 뉴욕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은 그 커다란 규모로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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