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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국 독립전쟁중인 1777년 가을에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벌어진 일련의 전투.
전쟁 국면이 식민지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선 전환점으로 흔히 일컬어진다. 1775~76년 미국의 캐나다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자 세인트로렌스 강 방면에 많은 수의 영국군 잉여병력이 생겼다. 1777년 남쪽으로 이동한 이들 부대는 허드슨 강을 따라 포진한 윌리엄 하우 경의 부대와 합세했다. 약 8,000명의 영국군 부대를 남쪽으로 이끌고가던 존 버고인 장군은 7월 6일 타이콘더로가 요새를 함락시키고, 7월 31일에는 허드슨 강 상류의 에드워드 요새를 장악했다.
그는 거의 1,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타이콘더로가 요새에 남겨 그곳을 지키게 했으며, 30일 분의 식량을 모은 뒤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허드슨 강을 건너 뉴욕의 새러토가 부근에 주둔했다. 식민지군(대륙군) 지휘관인 호레이쇼 게이츠 장군은 1만 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약 6.5㎞ 떨어진 곳에 주둔해 있었으며 날마다 증원군을 받았다.
9월 19일 버고인의 군대는 남쪽으로 이동해 프리맨스팜 전투(제1차 새러토가 전투)에서 식민지군 병력과 싸웠다. 버고인은 게이츠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으므로 올버니 방면으로 진격했다. 10월 7일 그는 1,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정찰에 나섰다가 베네딕트 아널드 장군이 이끄는 식민지군의 격렬한 반격을 받았다. 이 교전은 베미스 고지 전투(제2차 프리맨스팜 전투 또는 제2차 새러토가 전투)라고 알려졌다. 이 무렵 버고인의 부대는 실전병력이 약 5,000명으로 줄어들었고 보급품도 떨어져가고 있었다.
10월 8일 버고인은 퇴각을 개시했으나 이당시 2만 명으로 병력이 늘어난 게이츠 부대는 새러토가에서 그를 포위했다. 10월 17일 버고인은 부대를 이끌고 항복해 새러토가 협정을 맺었으며, 이 협정에 따라 그의 부대는 전쟁기간중 다시는 북아메리카에서 복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영국 귀환을 허락받았다. 새러토가 전투에서 식민지군이 승리한 데 고무받아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공공연한 군사적 원조를 제공했다. 이때문에 이 전투는 미국 독립전쟁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는 전투이며 식민지인들의 궁극적 승리를 가능하게 해준 전투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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