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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은 철기의 보급으로 농업생산력이 증대하고, 여러 정치세력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격화된 시기에 성립했다. 삼국의 성립시기와 그 과정은 세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 유역에 거주하던 맥족이 세운 국가이다.
압록강 지류인 훈장 강[渾江]과 그 유역 일대에는 BC 4~3세기 무렵 이후 철기의 보급으로 사회분화가 급속하게 진전되었다. 이때 맥족들은 유력한 친족을 중심으로 계곡이나 하천 유역에 거주하면서 정치집단을 형성하여 그곳에 성을 쌓고, 그 촌락들을 홀·골·구루(溝婁)라고 칭했다. 이렇게 고유한 음(音)으로 표기한데서 고구려의 '구려'라는 명칭이 나왔다. BC 108년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구려지역에 현도군(玄兎郡)을 설치하자, 이 집단들은 그에 예속했다. 그러나 고구려인은 그들의 직접적인 지배에 저항했고, BC 75년에 현도군을 요동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때 고구려의 여러 정치집단들은 소노(消奴) 집단의 장을 왕으로 하는 연맹체를 구성했다. 후에 주몽을 중심으로 한 계루집단이 세력을 강화하여 소노집단을 누르고 주도권을 장악했는데, 이 시기가 BC 37년경이었다. 이 무렵 계루집단이 집권적인 정치력을 구축함으로써 고구려지역 전체를 통합하는 강력한 고대국가를 형성했다. 백제 건국의 중심세력은 북에서 내려온 부여계·고구려계 이주민집단들이었다. 백제의 건국설화에 의하면 고구려에서 남으로 이주해온 비류·온조(溫祚) 형제가 각각 미추홀과 위례(慰禮)에 자리잡았다가, 뒤에 형 비류가 이끌던 미추홀집단이 온조집단에 합류하면서 백제라는 국가를 건국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강유역에 자리잡은 부여계·고구려계 이주민들이 한꺼번에 옮겨와 정착한 것은 아니었고, 기원 전후 시기에 소집단별로 정착했다. 한강유역 각지에 자리잡은 이들 집단은 그 지역의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정치집단을 형성했다가 그뒤 모두 통합하여 백제국가를 성립했다. 신라는 진한(辰韓) 12국의 하나였던 사로국을 모체로 성립했다. 신라의 건국설화에 의하면 경주지역에 살던 6촌(六村) 세력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으로 추대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 설화는 고조선이 멸망한 뒤 대규모 이주민이 경주지역으로 내려왔고, 그들과 그 지역의 토착세력인 6촌세력이 연합하여 신라를 건국한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경주지역 유적에서 1세기 무렵의 고조선계 철기유물이 대량 발견되고 있는 점은 철기문화를 보유한 고조선계 이주민이 토착세력에게 영향을 끼쳤고, 이들 2개의 집단들이 연합하여 신라를 건국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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